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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님의 서재
  • 언니네 미술관
  • 이진민
  • 16,650원 (10%920)
  • 2024-10-28
  • : 3,805
📑
#언니네미술관
#이진민 #한겨레출판

💡
똑똑하고 따뜻하고 섬세한 '언니'랑
볕 좋은 가을 평일 낮에 미술관에 놀러간 기분이다.
언니는 미술관에서 조곤조곤 작품과 작가와 얽힌 미술사적 이야기도 해주고,
전시를 보고 나와서는 원목 가구가 깔끔하게 채워진 카페에서
따뜻한 라떼를 각자 마시며
고민 상담도 꼼꼼히 들어준다.
카페에서 나와서는 짭쪼롬한 국물 요리에 소주 한 잔을 곁들여 마시며
가게 한켠에서 나오는 티비 뉴스를 보고 함께 얼굴을 붉힌다.
책 한 권으로 이렇게 의미 있는 가을날을 보낼 수 있다.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문장들은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하루종일 함께 보낸 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처럼 가슴을 따뜻하게 덥힌다.
동생들에게, 딸들에게.
이런 언니, 이런 엄마가 되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
<언니네 미술관>은 동료 여성들, 즉 세상의 딸들에게 건네고 싶은말을 담은 책입니다. 여성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것은 그대로 남성에게도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약 절반씩을 차지하며 함께 걷고 있으니까요.
5p

그냥, 몸을 쓰는 일이 낯설었다. 좁은 공간에서 틀어박혀 조용히 책 읽고 작은 것들을 조물조물 만들며 시간을 보내는 나를 어른들은 얌전하다며 칭찬했다. 내 옆구리살은 그런 달콤한 칭찬을 먹고 몽글몽글 불어났다. 팽창하는 옆구리와는 반대로 나의 세계는 작게 쪼그라들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잘 몰랐다. 몸을 움츠리고 어딘가에 가만히 놓인 여자아이들이 얌전하다며 칭찬을 받는 동안, 남자아이들은 넓은 운동장이든 좁은 골목길이든 공간을 점거할 권리를 누렸고 거기서 몸과 마음을 한껏 뻗어보고 있다는 사실도. 그걸 보고 '쟤네들은 공부도 안 하고 놀기만 하네'라고 생각했던 어린 나의 순진함이 안쓰럽다.
23p

산다는 것은 동사다, 어딘가에 가만히 놓여 있는 명사가 아니라, 걷고 달리고 고꾸라져 넘어지고 숨을 고르고 다시 일어서서 발을 내딛는. 그렇다면 이렇게나 무수한 동사로 이루어진 삶을 사는데 어째서 근육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일까. 딸들에게 울퉁불퉁한 근육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너희는 가만히 명사로 살아가라는 얘기다. 나는 세상의 딸들이 몸을 쓰고 움직이며, 휘두르고 걷어차며, 내뻗고 달려가며, 삶의 희열을 느끼기를 바란다. 한껏 최선을 다해 다양한 동사로 살아보기 바란다.
43p

마귀라는 것은 그저 삿된 것이다. 억울한 사람이나 똑똑한 사람이 받아야 할 이름이 아니다. 그리고 마귀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우리 안에 있다. 성별을 불문하고 우리 마음속에는 삿된 것들이 찰랑거리는 항아리가 하나쯤 들어 있다. 거기에 든 걸 얼마나 자주 흘리는가의 문제지, 완벽하게 성수만 담긴 금빛 항아리는 없다. 알브레흐트 뒤러의 1514년 작 <멜랑콜리아 1>이라는 작품 속에는 여성인 듯하면서도 남성인 듯한 인물이 천사의 날개를 단 채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게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여성적이기도 남성적이기도 하고,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 상대를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싶을 때, 그 손가락으로 내 안의 괴물을 먼저 더듬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마녀를 닮은 수많은 단어들을 만날 때마다, 슈투크의 그림 속 눈동자를 떠올리면 좋겠다.
마녀라는 단어는 고통받는 자들을 위한 대명사다. 나는 천사보다 마녀라는 단어가 더 사랑스럽다. 그 안에는 눈물과 멍 자국도 있지만 아름다운 불꽃이 들어 있다. 세상이 나를 부당하게 대할 때, 너를 당치 않은 이름으로 부를 때, 우리를 어처구니없게 만들 때, 그 작은 불꽃들이 꺼지지 않고 아름답게 타오르기를 응원한다.
82~83p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시를 읽기 전까지는 나는 기쁨의 차가운 이면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다. 시인은 우리가 가난한 할머니에게서 귤값을 깎을 때 느끼는 감정이 기쁨이라는 잔인한 사실을 전한다. 기쁨은 따뜻하고 빛나는 감정일 것 같지만 의외로 차갑고 어두운 면이 있다. 반면에 슬픔은 인간의 감정 가운데 타인에게 가장 무해한 감정이다. 아픈 사람들 곁에 늘 맑게 자리한다. 쓸데없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 늘 조용히 따라다니며 세상을 어루만지는 감정이다.
133p

※ 이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서평단 활동의 일원으로,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hani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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