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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 윌리엄 해즐릿
  • 15,030원 (10%830)
  • 2024-08-30
  • : 18,675
📑
#혐오의즐거움에관하여
#윌리엄해즐릿
#아티초크

💡
혐오의 즐거움
죽음의 공포
질투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들
학자들의 무지

어느 것 하나 유쾌한 것에 대해 유쾌하지 않은 태도로 말하는데도
그는 밉게 느껴지지 않는다.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던 불유쾌함을 솔직하게 표출함으로써
답답하던 가슴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 같다.

특히 죽음과 독서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 읽히기 위한 활동을 하면서도
그에 대한 모순을 지적하는 태도에서
유약하면서도 강인한 성정이 드러나 재미있기도 하고,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본질에 골몰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
인간의 본성은 깊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반감들로 이루어져 있는 듯하다. 혐오할 게 없으면 생각과 행동의 원천마저 잃어버릴 것 같다. 삐걱거리는 이해관계, 제멋대로인 열정으로 계속 파문을 일으키지 않으면 삶은 고인물이 될 것이다. 우리의 운수에 생기는 흰 줄은 그 주위가 어두울수록 더 밝아진다(또는 잘 드러난다). 무지개의 모야은 배경에 구름이 있어야 선명하다. 그 감정은 교만일까? 시기일까? 대비의 효력일까? 약점일까, 악의일까? 인간에게는 악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어서 나쁜 짓을 해도 운 좋게 생각되는 비뚤어진 쾌감을 얻는다. 나쁜 짓은 변함없는 만족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순수한 선에 금방 싫증을 내고 변화와 활기를 원한다. 고통은 씁쓸하면서도 달콤하며, 이 맛은 물리지 안흔다. 사랑은 조금만 탐닉해도 무관심이나 역겨움으로 변한다. 혐오만이 죽지 않는다.
38~39p

우리는 개인 생활에서 득세하는 위선과 노예 근성, 이기심, 후안무치와 충돌할 때 겸양은 위축되고 가치가 짓밟히는 것을 보지 않는가? 장미꽃 같은 정숙한 여자가 얼마나 자주 매춘부로 만들어지는가! 진정한 열정이 성공할 가망이 있을까? 그 성공은 확실하게 지속될까? 나처럼 이 모든 것을 보고, 인생의 직물을 풀어 비열함과 악의, 비겁함, 감정의 결핍, 이해의 결핍, 타인에 대한 무관심, 자신에 대한 무지라는 다양한 실로 구분하고, 관습이 모든 우수성을 압도하고 악행에 길을 내주는 것을 보고서, 타인을 내 관점에서 평가하되 잘못해서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품은 희망이 와오되었어도, 우정에 속는 얼간이이자 사랑에 우롱당하는 바보인 내가 가장 의지하던 것에 낙담했다면, 이것이야말로 나 자신을 혐오하고 경멸할 이유가 되지 않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세상을 충분히 혐오하고 경멸하지 않았기 때문에.
59~60p

죽는다는 것은 태어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아무도 이 생각에는 연민이나 유감이나 반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홀가분해진다. 태어나기 전은 우리에게 휴가 기간이었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는 예복이나 누더기옷 차림으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야유를 받기도 하고 갈채를 받기도 하는 이 인생의 무대로 호출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무런 해가 없이 안전했다. 우리는 꺠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수만 년 동안 잠을 잤다. 너무나 부드럽고 고운 흙에 감싸여, 갓난아이보다 더 깊고 고요한 잠에 빠진 채, 아직 생명체로 발달하기 전의 상태에서 근심걱정 없이 평온하고 자유로웠다. 그런데 이제 찰나의 삶을 안달복달하며 열띠게 산 뒤, 헛된 희망과 하찮은 두려움으로 점철된 삶을 산 뒤, 다시 마지막 편안한 잠에 빠지고 삶이라는 불온했던 꿈을 잊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다니!
65p

내게 비밀을 말하는 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짓이다. 글로 인쇄되어 나올 테니까. 나는 친구들을 기쁘게 해주는 일엔 관심이 없다. 그리고 사람들을 내 글에 주목하게 하는 건 내게 굉장히 큰 유혹이다.
164p

※ 이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서평단 활동의 일원으로,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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