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넌 어때?
나한테는 물어볼 필요 없어요. 난 무법자니까.
-p.90
크리스 휘타커의 <나의 작은 무법자>는 단지 범죄 소설이 아니다. 이 책은 ‘정의’와 ‘사랑’ 사이에서 끊임없이 충돌하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서사 중심에는, 세상에 분노하는 한 소녀가 있다. 하지만 한 소녀의 거침없는 투쟁기라기엔 너무나 가혹해서 분노가 인다.
13살 소녀 더치스의 삶을 보라. 어린 나이에 세상의 잔혹함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다. 엄마는 약물과 자책 속에 빠져 있고, 어린 동생 로빈은 그녀의 보호 아래 있다. 그녀는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고, 아이보다 더 상처받아 있다.
(어떤 일들은 그저 일어나지만-p.96)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저 일어난 일들로 인해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고 그 힘에 미래가 궤도에서 벗어나 -p.17)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운명의 장난은 지나치게 잔인하다. 인연은 악연이 되고 선한 자를 악인으로 둔갑시킨다. 다음 생을 기약해야 될 정도로 사연은 기구하고 안타깝다. 불행은 나쁘지만은 않았던 과거의 시간들마저도 흡수해서 더 큰 불행을 낳았다. 예측 가능할것만같던 사건도 예측불가능하게 만들만큼 쇼킹했다.
그렇게 더치스는 분노로 세상을 밀어내는 아이가 된다.
소설은 그녀의 복수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그리고 복수가 진정 구원이 될 수 있는지를 질문하며 흐른다.
빈센트의 사고는 모든 관계를 파괴하고 일그러뜨렸다. 그는 삶에 대한 의지가 희미하지만, 일정한 책임감을 품고 있다.
열다섯 살 소년이었던 시절. 그는 좋아하던 소녀(스타)의 여동생(시시)을 치어 죽였고, 감당하기 힘든 죄책감으로 더한 죄를 짓고 3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집으로 돌아왔음에도 그는 늘 벼랑 끝을 서성인다. 하지만 운명은 이번에 그를 스타의 살인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마을에서 그는 다시 위험인물로 분류되지만 절친 워크와 무법자 더치스의 시선은 엇갈린다. 무죄와 유죄 사이에 놓인 그의 운명에 나는 오해와 확신으로 갈팡질팡했는데, 설마?하는 의문까지 더해지자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는 서사의 촉매제이자 미스터리의 중심에 놓여 있다. 그리고 죄를 저지른 자이자 속죄하고자 하는 자이다.
한 미모했던 스타는 여동생의 죽음 이후 무너진 가정으로 심신이 망가져 버렸다. 상처받은 자존감과 정서적 불안정 속에 방치된 삶을 살아가는 인물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그녀의 환경은 양육할 수 없을 만큼 엉망이다. 절친이었던 워크가 신경을 쓰고 있으나 그녀의 삶을 보고 있자니 그녀의 이른 죽음은 예견된 미래였는지도 모르겠다. 소녀 더치스를 세상의 끝에 서 있게 만든 것도, 분노로 이성을 잃게 만든 것도, 삶의 빛을 소멸시킨 것도 엄마다. 어린 로빈의 기억에 커다란 암흑을 드리운 것까지도.
그녀는 사회와 가족의 이중적인 폭력 속에서 버려진 존재로 무너진 어른의 상징이자, 상처받은 여성상이다.
빈센트의 죽마고우이자 경찰서장 워크는 친구들이 겪고 있는 불행의 시간을 덜고자 애쓰는 인물이다. 쓰라린 첫사랑(마사)의 아픔과 빈센트에게 빚진 마음과 무너져가는 몸뚱이까지. 그의 현재도 그다지 괜찮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가 지닌 진득한 우정과 믿음은 고독하고 쓸쓸하기 그지없다.
자신이 세운 정의가 사람들을 파괴했다는 인식 아래 무력감과 자기혐오에 시달린다. 제도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나, 결국 인간적인 방식으로 책임을 완수하려 한다. 그렇듯 자신에게 남은 시간만큼은 더는 주변인들에게 불행이 퍼지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친구의 무죄와 스타의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쓴다. 그 과정에서 마사와 함께하며 과거의 상처가 조금은 치유돼가는듯해 다행스럽기도 했다. 그는 과거도 잃고 친구도 둘이나 잃었으니까.
내일처럼 말하지 말라고요. -p.253
이러한 양육환경에 놓인 열세 살의 더치스는 세상을 향한 분노와 불신으로 무장했지만, 그 속엔 강한 가족애와 책임감이 숨겨져 있다.
거친 세상으로부터 엄마와 동생을 지켜내기 위해 무법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소녀의 주먹은 거침없고 언어는 거칠기 그지없다. 자신의 처지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과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소녀는 더욱 독해져 간다. 눈물도 흘리지 않을 만큼. 무법자니까 '괜찮다'라는 자기 위안과 살인자를 향한 분노는 소녀를 점점 위험한 상황으로 내몬다.
엄마의 죽음과 연이은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거침없는 무법자가 되어가지만 감춰진 진실이 드러났을 때 밀려드는 안타까움 때문에 화가 나기도 했다.
어른들의 무거운 입 때문에 소비한 감정싸움에 소녀는 희생자였다. 어찌보면 어른들이 만든 잘못된 정의와 책임의 공백 속에서 스스로 정의를 구현하려는 존재가 되려 한건지도 모른다. 이 무슨 지랄맞음인가.
케이프 헤이븐, 이 지랄맞은 운명의 장난 때문일까. 갑자기 이곳의 모든 인물이 다 가엽게 느껴진다.
사건의 윤곽이 선명해질수록 더치스의 운명은 희미해지고 안락한 빛이 절실한 소녀에게 거친 황야는 자꾸만 손을 내민다. 소녀는 받아들인다. 동생을 위해 진짜 총을 든 무법자가 되기로.
소설은 더치스를 통해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사랑을 거부하면서도 결국 사랑을 원하게 되는, 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무법자야!”라고 외친 말은 강인함의 선언이 아니라 절박함의 신호였다.
더치스는 말한다. 자신의 이야기는 하잘것없다고. 그렇지만 언젠가는 괜찮아질지도 모른다는 작은 믿음도 있다. 모든 하잘것없는 존재에게도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는 공식이 들어맞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워크 같은, 토마스 같은, 돌리 같은, 셀리 같은, 길 위에서 만난 행크와 비지 같은 다정한 존재는 필수다. 더치스의 완성된 가계도에 의미를 더할 존재들 말이다.
이것은 흔한 성장소설의 끝맺음이 아니다. 상처받은 존재가 정의로운 선택을 통해 다시 인간이 되는 서사를 보여준다
더치스는 가족의 붕괴라는 끝에서, 워크는 정의의 실패라는 끝에서, 빈센트는 과거 죄의 심연에서. 그들은 모두 끝에서 다시 시작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