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세상사 내 맘 같지 않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것이 임현의 소설집이 아닐까 한다. 아홉 편의 단편들을 읽다 보면 뉴스를 장식한 사건부터 잊고 있었던 나의 경험담까지 하나둘 떠오른다. 살다 보면 어디까지가 상식이고 도인지가 모호해지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맞고 틀린 건지, 어디서부터가 문제였는지조차도 모를 때가 있다. 한 권의 육아서를 열 명이 읽으면 열 권이 되는 현상이 요즘 세상이다. 편견의 덫에 걸린 사람들과 지레짐작의 늪에 빠진 사람들이 던지는 시선들에 무수한 진실들이 밟힌다. 믿을 건 나 자신뿐이라는 믿음조차도 부서지는 현실에서 무얼 붙잡고 버텨야 할까.
남색과 보라색의 애매함에 대해 언급한 <목견>을 읽다가 반품 받은 타올이 생각났다. 자수 작업까지 완료된 타올이었음에도 본인이 생각한 하늘색이 아니라고 우기던 고객은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모니터에 따라 색상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문구 따위는 애당초 먹힐 리가 없었고 손해에 대한 속상함보다 그런 것 하나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났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과연 그게 설득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소통에 능한 재주를 가질 능력이 안돼서일까. 단편 속에 등장하는 여럿 관계들을 보면서 우리는 교묘하게 진실을 피해 가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행운은 또 다른 누군가의 불행일 것이고 불행의 당사자가 되면 불행을 탓하고 원망할 대상이 존재해야 안도감을 느낀다.
<그들의 이해관계>에서 아내를 잃은 '나' 역시 그 대상을 찾으려 했으나 버스기사의 불행 앞에 마음을 접고 만다. 오히려 일인 시위라도 하고 있는 버스기사의 처지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알맞게 불행하고 적당하게 균형을 누리다가 누군가를 위해 휘청거려 주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전해주는 그런 거. -p.29 그런 것들이 복잡 미묘한 관계를 끌고 나가는 원동력이지 아니할까.
<그들의 이해관계>에서 '나'와 해주는 서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눈치껏 서로를 배려하던 사이는 삐걱거리는 시간 속에서 무심함으로 무장하고 견딘다. 한쪽의 시간이 멎어 버리고 나서야 나머지 한쪽은 후회와 미련이라는 아픔의 시간들로 가득하다. 결국 '나'는 나를 탓할 수밖에 없다. <나쁜 사마리안>에서 '나'는 예전에 알고 지내던 어떤 이를 대리기사로 다시 만나게 되지만 상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래전 울고 있던 그를 만난 적이 있었던 '나'는 그 스침의 만남이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우연이라는 공간 속에 착각이 불러온 의도되지 않은 공감인 셈이다. 그보다 '나'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지금 곁에 있는 도경의 존재다. 나쁜 사마리안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그녀의 농담에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대인관계에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때문에 곤혹을 치러야 되는 경우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변명은 해명이 되고 적당히 몸을 사리려다 이도 저도 못한 억울함을 겪기도 한다. 아마도 제일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아닐까. 내가 그어 놓은 선이 과연 적당선인지도 헷갈리고, 상대의 삐딱선에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면 감정적 무능함마저 느껴야 하니까.
게다가 요즘처럼 사람들에게 화가 들어 차 있고 여차하면 시비에 휘말리는 이런 때에는 더더욱.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에서의 감정의 살얼음판을 보는 것 같다. 중립, 균형, 공평, 겸손의 자세로 모든 이들을 대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부터 반문하고 싶다. 애초에 세계는 여러 갈래인데 하나라고 믿는 거 자체가 틀렸다. 여러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게 일차적 목적은 아니지 않나.
요컨대 우리는 의미 있는 무언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는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p.110
<목견>에서는 보여야 할 것이 보이지 않자 다른 것을 볼 수 밖에 없는-p.205 사람들 때문에 견디지 못한 경비의 사연이 등장한다. 그들이 갖는 확신과 보이는 대로만 믿어버리는 자들 앞에서 침묵과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예정>에 등장하는 상식 이하의 인간들을 보고 있자니 이미 자극을 받을 대로 받은 말초신경이 폭발하며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나는요. 정말이지 사람이 싫습니다. 자기만 옳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을 아주 혐오합니다. -p.173 그럼에도 우습지만 나 역시 그런 인간인 적은 없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얼마 전에 본 김보름 선수의 기사를 보며 너무나 맘이 편치 않았다. 당시 나 역시도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던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진실의 반대가 거짓이나 가짜가 아니라 무지라는 말이 무척 공감이 된다.
인간은 아니 우리의 이해관계는 모순 덩어리다. 그렇기에 점점 사람을 상대하는 것 역시 견뎌내야만 하는 일이 되어버렸고 선의의 위로조차 통하지 않는 때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해원>에게 불빛을 비추던 경비 아저씨의 태도였고 그처럼 묵묵히 빛을 내고 있는 불빛으로 인해 견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