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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lsi님의 서재
  • 촌촌여전
  • 상주함께걷는여성들 기획
  • 15,300원 (10%850)
  • 2024-12-30
  • : 295

촌촌여전 독자 소감 전문 - 김효근

안녕하세요?

낙서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김효근 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귀한 자리에 저 같은 사람을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합니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분이신 김혜련 선생님께서 저에게 전화를 주셔서 이 자리를 제안해 주셨습니다. 마침 그때 제 손에 이 책이 들려있었고, 또 책을 감동하며 읽었던 터라 얼떨결에 그 제안을 수락해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많이 후회했습니다. 제가 이런 자리에서 말할 성격이 못되기도 하고, 또 자격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제안하신 이유가 있으시겠지요. 아마도 상주에서 살아온 남자 사람이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를 나눠달라는 뜻이신 것으로 저는 받아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냥 제가 어떻게 읽었는지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의미 있는 나눔이 되기를 바랍니다.

.......

저는 이 책을 쓰신 분 중 몇몇과 같이 공부 모임을 하고 있는데, 공부 모임은 항상 '시'를 읽으며 시작합니다. 오늘도 시 한 편을 읽고 시작하고 싶습니다.

떨었는거

김순옥

잘 때 추워서

떨어서

거지 생각 하였다.

(1962. 11. 23.)

이 책에 실려있는 시입니다. 이오덕 선생님께서 가르치신 상주 청리초등학교 아이들이 쓴 시를 모아 놓은 책입니다. 상주로 찾아오는 지인들에게 선물하곤 하는 책입니다. 유시민 작가님께서는 '글쓰기 특강'이라는 책에서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글 바로 쓰기>를 꼭 읽어볼 것을 권하시면서, 그 책이 못난 문장에 물들지 않도록 하는 '백신'이라고까지 표현하셨습니다. 교육자이자, 우리말 연구가이셨던 이오덕 선생님께서 내가 사는 상주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셨다는 사실이 뿌듯해서 지인들에게 자랑하듯 선물하는 책입니다. 이 외에도 권정생 선생님께서 상주를 생각하시며 쓰신 '복사꽃 외딴집'이나, 상주 도서관에서 심심치 않게 뵐 수 있는 김수박 작가님께서 쓰신 '문밖의 사람들' 같은 책들도 자랑스럽게 선물하곤 합니다.

그리고 이제 선물할 책이 한 권 늘었습니다. 사실 벌써 한 권 선물했습니다.

.......

저는 상주 토박이입니다. 상주에서 어린이집,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지역아동센터를 다녔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지역아동센터 센터장님께서 저에게 해 주셨던 말씀은 지금도 시인의 경구처럼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말씀들입니다. '이 지역아동센터를 거쳐 간 아이들이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 편히 찾아올 수 있도록 이 자리를 계속 지키고 싶다.' 제가 다닌 센터는 2005년에 지역아동센터 시설 신고를 했으니, 올해로 20주년이 됩니다. 흰머리가 늘어가시는 센터장님을 보면 마음이 아릴 때가 있습니다.

센터장님의 말씀을 다르게 변주해보자면 '모항이 있는 배가 멀리 간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의 교육학자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께서 쓰신 '완벽하지 않을 용기'라는 책에서 읽은 문구입니다. 어머니 '모'자를 쓰는 모항은 어떤 배의 근거지가 되는 항구를 말합니다.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은 이렇게 쓰셨습니다. "모험 여행을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는 것은 돌아올 장소를 갖고 있어서다. 여행과 모험으로 성숙을 이룬 사람들이 자신의 성숙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모항을 통해서이다. 자신이 그동안 무엇을 해왔는지, 자신이 어떤 인간으로 거듭났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모항에 돌아갈 필요가 있다."

저에게 상주는 모항입니다. 저는 힘들고 어려울 때 상주에 있는 가정, 학교, 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가 도움을 구했습니다. 제가 지금 어느 정도까지 와있는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상주에 계시는 이분들 덕분에 이 정도나마 스스로 설 수 있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도 저의 모항이 몇 분 계십니다. 중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나눌만한 음식이 생기면 저에게 전화를 걸어 잠깐 집 앞으로 잠깐 나오라고 하십니다. 이제는 저 역시 그 모항에서 새로 출발하려는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집 앞으로 잠깐 나오라고 하곤 합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제가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내 모항을 긍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고향의 목소리에, 모항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라는 말처럼 중심지가 아니면 뒤처진다는 생각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주에서도, 상주도 나름으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역사학자 함석헌 선생님께서는 '뜻으로 본 한국 역사'라는 책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살려 주시기 때문이다. 살려 주시는 것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증거다.' 함석헌 선생님께서는 한국의 역사를 '고난의 역사'라고 하시며, 그 고난 속에서 한국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상주도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런 모양으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주가 서울과 같지 않은 이유는, 상주 나름으로 할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도시가 서울과 같다면 우리나라는 숨 쉴 틈이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어쩌면 상주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서관에는 사람이 많아야 좋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은 '도서관에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는 짧은 강연을 하셨습니다. 도서관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은 도서관은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 가르쳐 주는 장소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도서관이란 들어서면 경건한 마음이 드는 장소입니다. 세계는 미지로 가득한 곳이라는 사실에 압도당하기 위한 장소입니다. 그 점에서 기독교의 예배당과 이슬람의 모스크, 불교의 사원 혹은 신사와 아주 비슷합니다. (...) 만약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교회 예배당을 '노래 교실'이라든지 '자산 운용 설명회'라든지 '재고 상품 세일 장터'로 빌려주면 어떻게 될까요? 이용자들이 떠나고 난 뒤 기도를 하러 예배당에 온 사람들은 "이게 뭐지? 뭔가 공기가 흐트러져 있어."하고 느낄 것입니다.’

상주가 해야 할 일이 꼭 지방소멸 도시를 극복하고 대도시로 거듭나는 것이어야만 할까요? 어쩌면 상주는 소멸할 수도 있다고, 그것이 상주가 할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어떻게 소멸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도서관 복도에 있는 '상상 라운지'라는 공간을 좋아합니다. '상상 라운지'. 멋진 미래를 상상하는 일, 그런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앉아야 할 것 같은 그 공간에, 할머님들이 종종 앉아 계십니다. 할머님들께서 도란도란 도란 이야기 나누십니다. 농사일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시다는 이야기, 똑같은 일 했는데 남자들보다 임금을 못 받으신 이야기. 도서관 문 닫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여 있으니 참 좋다. 맨날 노인정에 있거나 집에 있거나 할 텐데….” 상주의 미래를 상상할 때는 할머님, 할아버님들을 빼놓고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상주 밖의 소리보다 그분들의 소리에 집중해보면 어떨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

이제 두서없는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어제 한 천문학자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천문학은 정말 문학 같습니다. 듣다 보면 빨려 들어갑니다. 빛이 지구에서는 1초에 지구 둘레 일곱 바퀴 반을 도는, 매우 빠른 편에 속하지만, 우주는 너무 거대하다 보니 빛이 느리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안드로메다 은하에서 출발한 빛이 우리 은하 안에 있는 지구까지 오려면 250만 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250만 년 전 안드로메다 은하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커다란 우주는, 지금도 팽창하고 있는데 대부분 텅 빈 공간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텅 비어있냐면, 한 은하 안에는 별이 수 천억 개가 있는데, 그런 은하와 은하가 서로 만나면 충돌 없이 그냥 지나가거나, 서로 충돌하더라도 서로의 중력 궤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텅 빈 우주 공간이 아깝다고 별들을 꽉꽉 채워놓으면 아마 별들은 서로의 중력 때문에 서로 부딪히고 파괴되기를 반복할 것입니다.

비어있는 공간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공간이 뭘 자꾸 채우려는 것보다, 이미 있는 것에 집중한다면…. 청리초등학교 어린이가 쓴 시에 나오는 것처럼, 추운 날 거지를 걱정할 수 있다면…. 주위 도움이 필요한 지역아동센터, 노인정 어르신들, 그런 사람들에게 눈을 돌릴 수 있다면…. 그러면 상주가 더 상주다워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더 가난하지만,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동화 같은 상상을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 덧붙여 두 가지 방법을 고민하다가 첫 번째 방법으로 발표했는데...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책에서 제가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을 줄줄 읽는 방법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독자 소감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올려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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