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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na님의 서재

(서른살이라고는 절대 믿을 수 없는 여인의 얼굴과)도발적인 제목. 여자라면 이런 제목의 책에 일단 손이 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사람 치고 예쁜 것(그것이 사물이든 인간이든)에 현혹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원래가 미를 추구하는 생물인 인간, "미학(美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미감을 극명하게 드러내지 않는가. 그러나 여성의 미감은 천대받고 금기시된 사회에서 '미소년이 좋다'고 당당히 드러내다니, 대체 어떤 사람이 무슨 얘기를 쓴 것일까. 엄청난 호기심과 함께 읽게 된 이 책은 그러나 내게 호기심의 강도과 비슷한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저자의 글의 핵심은 '남성의 성도 상품화 하라!' 이다. 성을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예전부터 있어왔던 일이고 그 자체로 나쁜 일이 아니니 남성의 성을 억압하지 말고 풀어주며 그로 인해 여성에게 돌아오는 결과적 권력이나 누리자는 저자. 이거, 웃어야하나 말아야하나. 참으로 고민스럽다.

성의 상품화를 비판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근본적인 명제로부터 시작된다. 성상품화 비판은 인간 스스로를 상품으로 만드는 천박한 자본주의적 상황을 개탄하며 현대 사회의 각성을 촉구한다. 그런데, 여성 성상품화만으로도 부족해서 남성을 성상품화 하자고? 그래, 이러한 의견은 여성으로서 어느면에서는 통쾌하고 짜릿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의 대응은 기원전 함무라비 법전 시대, 그러니까 기원전에 이미 끝이 난 얘기 아닌가. 여성의 성상품화에 대한 대안은 여성의 성상품화 저지에 있지 남성의 성상품화 촉발에 있지 않다. 물론 남성의 성상품화로 인해 결과적으로 여성이 권력을 쥐게 될 수도 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의 수준을 전반적으로 한층 낮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무기력한 하향적 평균은 그렇게 얻은 여성의 권력마저 허무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나는 이 사회가 여성의 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깊은 모멸감과 함께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이를 시정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시정은 남성의 성까지도 상품진열대로 끌어내리는 하향적 평균화가 아니라 여성의 성상품화를 근본적으로 저지하려는 상향적 평균화이다. "어차피 세상이 다 그렇지, 너도 때 묻고 살다보면 다 그렇게 돼,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잖아" 라는 패배적인 합리화에, 나는 끝까지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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