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들을 통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공유하는 가치들이 있음을 발견하였고, 작가로서의 그의 생각과 문학에 대한 자세 등을 옅볼 수 있는 기회였다.
"죽음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생각에 익숙해져라. 왜냐하면 모든 선과악은 지각에 근거하는데, 죽음은 이러한 지각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을 올바르게 통찰하면, 우리의 유한한 삶은 즐거울 수 있다. 왜냐하면 이 통찰이 우리 삶에 무제한적인 지속성을 부여하기 때문이 아니라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구를 없애기 때문이다.(...) 가장 끔찍한 악인 죽음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오지않고 죽음이 오자마자 우리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폴커 슈피어링, `철학옴니버스`, 자음과모음, 2013) -`보다` p.93-
"인간은 원래 연극적 본성을 타고 납니다. 이 본성을 억누르면서 성인이 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되려는 욕망, 다른 사람인 척하려는 욕망을 억누르면서 사회화가 되는 겁니다." (...)
우리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존재,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러가지 모습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게 무엇인지 영원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장면은 바로 우리의 일상일 것이다.
일상에서는 누구도 `컷`이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삶은 때로 끝도 없이 지루하게 이러지는 것만 같다. 그럴 때 누군가 이렇게 말해주면 참 좋을 것이다.
"자, 다시 갑시다." -`보다` p.123-
우리는 정보와 영상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뭔가를 `본다`고 믿지만 우리가 봤다고 믿는 그 무언가는 홍수에 떠내려오는 장롱 문짝처럼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우리 정신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댈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 생각을 적는 것이다. -`보다` 작가의 말 중 -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에게 허용된 최후의 자유이며,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마지막 권리입니다. 글을 씀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폭력에 맞설 내적인 힘을 기르게 되고 자신의 내면도 직시하게 됩니다. (...) 그게 무엇이든 일단 첫 문장을 적으십시오. 어쩌면 그게 모든 것을 바꿔놓을지 모릅니다. -`말하다` p.60-
만약 글쓰기가 즐겁다면 그것은 글쓰기가 우리를 해방시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감옥에 있을때도 글을 쓰고 정말 고통스러울 때도 글을 쓰잖아요.(...) 그런데, 그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살고 있었다면 과연 그런 시를 썼을까요? 감옥에 갇혔을 때 정말 갑갑하고 괴로울때 인간은 글을 쓴다는 거죠. -`말하다` p.135-
이렇듯 창작의 과정이 복잡, 미묘하고, 독서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이라면, 작가와 독자가 직접적으로 소통한다는 것은 환상일 겁니다. 양자 사이에는 작품이라는 일종의 미로가 존재하며, 설령 그 미로 어딘가에서 양자가 만난다 해도 서로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말하다` p.169-
책으로 얻은 것들은 누구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독서는 다른 사람들과 뭔가를 공유하기 위한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공유할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 내면을 구축하기 위한 것입니다. -`말하다` p.180-
소설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라는 어떤 우월한 존재가 책이라는 대량 생산품을 소비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이야기가 책이라는 작은 틈을 통해 아주 잠깐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세계와 영겁의 시간에 접속하는 행위입니다. 이야기의 세계는 끝이 없이 무한하니까요. -`읽다` p.69-
(...)우주안의 모든 존재가 서로를 끌어당기고 밀어내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도록 만듭니다. 책의 우주도 이와 비슷합니다. 책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개개의 책은 다른 책이 가진 여러 힘의 작용 속에서 탄생하고, 그 후로는 다른 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읽다` p.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