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 - 김훈, 문학동네, 2015
이 책은 오래전에 절판된 산문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생각의나무, 2002), [밥벌이의 지겨움](생각의나무, 2003), [바다의 기별](생각의나무, 2008)에 실린 글의 일부와 그 후에 새로 쓴 글을 합쳐서 엮었다.
이 책의 출간으로, 앞에 적은 세 권의 책과 거기에 남은 글들은 모두 버린다. - 김훈 -
책의 첫 문장이 시작하기도 전에 독자들에게 '일러두기'를 쓴 김훈의 문장을 읽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과거에 출간했던 세 권의 책 속에 실린 글들을 새로 모아 새 책을 냈다고 하면서 앞에 세 권의 책과 거기에 남은 글들을 모두 버린다는 저자의 심경을 읽어보려 노력했지만 나는 도무지 공감할 수 없었다. 저자의 태도가 그르다는 것이 아니라 나라면, 도저히 내 흔적들을 저리 과감히 '버린다'고 선언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설이 아니고 산문이라 하더라도 글을 쓰고 책을 엮었을 때 가슴이 울렸을 터인데 그것을 어찌 버릴 수 있겠나.. 나는 물론 앞에 적은 세 권의 책을 모두 읽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샀을지도 모른다. '엑기스'라고 생각했기에..
그래서 그가 버리고자 하는 글들을 어쩌면 영원히 읽지 못할 수도 있다. 그가 버리든 버리지 않든 그의 글이 더 이상 그의 글이 아닐 소도 있음을 그는 헤아리고 있을까..
아, 나는 한평생 단 한번도 똥을 누지 못한 채, 그 많은 똥들을 내 마읆에 쌓아놓아서 이미 바위처럼 굳어졌다. 삶의 기억과 파편들은 내 마음에 찍혀있고 그 헛것이 주인 행세를 해왔는데, 내가 그 헛것에 갇혀서 오도가도 못하므로 똥은 이미 허상이 없으므로 똥의 장벽은 완강할 뿐 실체는 아닐 것이었다. 허상은 헛됨으로써 오히려 완강할 테지만 실체는 스스로 자족하므로 완강할 이유가 없을 것이었다.
울진 바다에 비추어 보니, 내 마음의 병명은 종신변비였다. 바다가 나의 병명을 가르쳐 주었다. 나에게 가장 시급한 처방은 마음에 쌓인 평생의 똥을 빼내고 새로워지는 것이리라. -p.50-
아직 살아있는 나는 죽어가는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마지막 망막의 기능으로 아직 살아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이 마지막 망막에 비친 살아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마지막 망막에 비친 살아있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죽어가는 그와 마찬가지로, 한 줌의 공기나 바람은 아니었을까. -p. 138-
사람의 목소리는 경험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추억을 끌어 당겨준다. 사람의 목소리에는 생명의 지문이 찍혀있다. 이 지문은 떨림의 방식으로 몸에서 몸으로 직접 건너오는데, 이 건너옴을 관능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그러므로 내가 너의 목소리를 들을 때, 나는 너를 경험하는 것이다. -p..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