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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님의 서재
  • 유전자 지배 사회
  • 최정균
  • 15,750원 (10%870)
  • 2024-04-30
  • : 42,680

무엇이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노력 신화가 깨지면서, 누군가의 성공이나 쉽게 할 수 없는 탁월한 행동들이 대다수 유전적인 결과라는 생각이 힘을 얻고 있다. 온 국민이 대학 입시에 관심 갖는 우리나라에서는 공부와 관련한 콘텐츠에서 이런 생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꾸준히 앉아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 자체도 노력이 아닌 유전이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은 쉽게 따라 할 수 없다는 자조적인 댓글에서부터 다른 분야에서는 타고난 재능을 인정하면서 왜 ‘공부’에서는 노력을 강조하냐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비판까지, 노력에 대한 불신과 유전자 결정론적인 생각이 지배적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개인의 적성과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모두가 대학 진학만을 위해 ‘노력’해야 했던 사회였기에, 유전자 차원의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나의 의지와 노력이 문제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은 획일적이고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 대한 탈출구로 느껴진다. 하지만 유전자 결정론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인간의 자유 의지를 문제 삼게 된다. 우리의 수많은 무의식적인 행위들이 실상 유전자에 의해 지배된다면(p. 17), 인간에게 자유란 있는가? 또, 현대 과학의 연구 결과가 맞다면, 자유 의지가 없는 개인의 행위에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이러한 의문은 신(神)이 이 세계를 창조했다고 믿고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을 신에서 찾았던 중세와 신에게서 벗어나 인간 이성이라는 독립적인 지위를 발견했던 근대에서도 다루었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중세∙근대에서는 초월적인 신, 만물에 적용되는 자연법칙(물론 우리가 아는 근대 사상가들은 자연법칙이 신의 법칙이라고 생각했다)과 인간 자유 의지의 조화가 문제였다면, 현대에서는 인간을 이루는 유전자와 자유 의지의 조화, 즉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대한 여러 이해를 조화시키는 게 문제가 된다.


이 책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질문을 생각하는 단초 역할을 해준다. 왜냐하면, 유전자 결정론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유전자가 인간의 행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지금까지 미쳐 왔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가정, 사회, 경제, 정치, 의학, 종교’라는 6가지의 큰 주제를 다루면서, 인간이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경제 제도나 사회제도에도 유전자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밝힌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최신 과학 연구를 체계적으로 습득한 한국인 저자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를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서구를 중심으로 학문이 발전되고 연구되는 현실에서, 서구인을 바탕으로 한 연구 결과와 일상생활의 예시들은 잘 와닿지 않고, 항상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 물론 저자가 인용하는 이론과 연구 데이터들이 여전히 서양 중심적이고 서양은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문화권이 많기에, 정치적 보수와 진보를 유전적으로 설명하는 부분 등에서는 의문이 생기긴 했지만, 저출생, 학력 인플레이션, 정치적 양극화와 같은 한국 사회의 문제를 유전자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다.

과학은 현실 세계에서의 관찰과 실제 데이터(증거)를 기반으로 엄밀한 검증을 거쳐 이론을 구축하며, 그 이론에 대한 반례가 제기될 경우 그 이론을 다시 검증하여 잘못된 이론은 수정∙폐기하면서 발전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적이거나 수학적이라고 하면 일단 신뢰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우리가 받아들이는 과학 이론은 ‘잠정적 결론’이며, 관찰과 이론의 근거가 되는 통계들은 필연성이 아닌 개연성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이 책에는 ‘가난하거나 불리한 계층의 사람들이 보수적 정책을 지지하고,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서 진보적 사고방식이 더 자주 발견된다.’(p. 140-144), ‘부유한 가정에서는 아들에게 더 많은 돈을 물려주는 반면 가난한 가정에서는 딸에게 더 많은 유산을 물려줄 것으로 예측된다’(p. 34) 등의 통계적 결과들이 많이 인용되는데, 이를 필연적인 사실로 여기고 사회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가령 ‘요새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를 많이 뽑는다는데, 보수를 뽑은 사람들은 가난해서 뭘 모르니까 그러는 거야’라는 식으로 말이다.

유전자가 인간의 행동 양식과 삶을 결정하는 만큼, 그 사회의 문화나 비유전적 요소들(법, 제도 등)은 특정한 개인을 형성해 낸다. 이 책에서는 경제, 정치, 종교와 같은 사회적 요소를 유전적으로 설명하긴 하지만, ‘왜 그런 경제 제도가 확립될 수 있었는가?’, ‘유전적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면 인간도 동물처럼 몇천 년의 역사 동안 거의 변화가 없어야 하는데, 왜 인간은 역사적∙문화적으로 차이를 보이는가?’ 등과 같은 근본적인 차원의 물음은 다루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서 인용되는 연구 결과를 무조건 신뢰하여 그대로 현재에 적용하고, 재단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그러한 태도만 피한다면, 이 책은 인간 이해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대해 많은 깨달음을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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