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seven2092님의 서재
  • 유령
  • 정용준
  • 13,500원 (10%750)
  • 2018-10-25
  • : 727

 유령 같은 인간 신해준. 이름도, 생명도, 감정도 없는 유령처럼 그는 신해준이라는 이름 대신에 474번이라고 불리며 교도소 내 사람들과 소통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담당 교도관인 윤에게만은 달랐다. 윤의 진심 어린 배려 때문에 신해준은 마음의 문을 열게 됐다. 사실 읽는 내내 불안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 리 없는데 과연 신해준도 진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연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먹잇감의 발견인 건지 헷갈렸다. 비정상적인 그에게는 ‘살인’이라는 행위가 심심풀이의 수단이기 때문에 윤 한 명 죽이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신해준이 윤에게 마음을 열게 된 이유가 호기심 혹은 동질감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해준이 진짜 악마라면 윤은 성장이 덜 된 악마 같은 느낌이다. 물론 윤의 이러한 성질은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고 자기 자신만 안다. 하지만 신해준은 바로 그것을 알아본 것이다. 끼리끼리란 말이 있지 않은가. 악이 악을 알아본 것이다. 자신과 똑같이 악으로 가득 찬 윤의 눈을 보고 그는 동족이라고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장처럼 신해준 같은 살인범을 보면 욕을 하고 인간 취급도 안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윤은 신해준의 과거,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던 타당한 근거를 알려고 했고 심지어는 그에게 동정심을 느끼기도 했다. 윤의 특기는 기다리는 것이다. 참을성이 있다는 뜻이냐고? 절대 아니다. 그는 생명이 꺼져가는 모습을 차분하게 지켜보는 ‘기다림’을 좋아했고 잘 했다. 개미나 강아지 같은 생명이 서서히 잠들어가는 모습, 누군가 몰락하는 모습, 누군가의 비밀이 탄로 나는 모습 등을 적절한 거리에서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완전한 악마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사악하다고 하는 게 적절한 것 같다. 윤은 계속 거리를 유지한 채 신해준이 자신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렸으며, 신해준은 그 미끼를 덥석 물었다. 일종의 ‘밀고 당기기’를 한 것이다. 이 소설이 참 잘 쓰인 소설이라고 생각한 것이 단순히 ‘악은 나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윤이라는 훌륭한 장치를 통해서 독자들이 ‘악’에 대한 존재론적인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끔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살인범은 인간이 아니라 악마다.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쓸모없는 존재다. 그들이 하는 흔한 변명 중 하나가 ‘병을 갖고 있어서’ 혹은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에’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 조금의 불편함을 느꼈고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것이다. 작가가 신해준이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의 내면을 계속해서 서사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한 장 한 장 읽을수록 이 불편함은 조금씩 해소된다. 작가는 악마를 변호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악’을 드러내려고 했던 것이다. 바로 ‘윤’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소설 속에서도 등장했듯이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살인자, 사이코도 아니고 속을 모르겠는 사람이다. 침묵이 더 무서운 법이다. 악이 침묵한다면 우리는 악을 알아낼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고 처벌을 내릴 수도 없다. 또한 알아내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악에 무지한 사람이 된다. <유령>은 우리가 악에 무지한 사람이 되지 않게끔 도와준다. 악의 입을 열어서 악의 실체를 드러낸 작품 <유령>. 악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악이 침묵할 수 있게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안 된다. 그들은 침묵할 권리조차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신해준’에 대해 알 권리가 있고 비난할 권리가 있다. ‘악’을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것인가.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