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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의 책다락
  • 레볼루셔너리 로드
  • 리처드 예이츠
  • 15,300원 (10%↓850)
  • 2025-12-22
  • : 6,069



리처드 예이츠의 소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2008년 개봉한 케이트 윈즐릿,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 동명 영화의 원작이다. 영상화가 된 소설을 읽을 때 좋은 점 중 하나는 등장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의 이미지로 각각의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는 건데, 이 소설도 그렇게 읽었다. 게다가 케이트 윈즐릿,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타이타닉>에서 이미 커플 연기를 한 적이 있다. 어떻게 보면 각 소설의 내용도 연결되는 면이 없지 않다. 중산층 진입에 성공한 듯 보이지만 내면에는 권태와 허무가 가득한 <레볼루셔너리 로드> 속 부부의 모습은, 각각 이민과 결혼으로 신분 상승을 꾀하는 <타이타닉>의 주인공 잭과 로즈의 미래 같기도 하다. 


이야기의 배경은 1960년대 미국 뉴욕 외곽에 새로 생긴 중산층 거주 지역 '레볼루셔너리 로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으나 현재는 뉴욕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회사의 부품으로 살고 있는 '프랭크'와 한때는 배우를 꿈꿨으나 프랭크와 결혼 후 전업주부가 된 '에이프릴'이 이곳에 집을 사서 들어온다. 남편은 잘생기고 좋은 대학 나오고 유명한 회사 다니고, 아내는 예쁘고 조신하고 살림 잘하고, 젊은 나이에 벌써 집도 있고 딸도 있고 아들도 있는 이들은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대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매일이 지루하고 앞날이 기대되지 않는다. 에이프릴은 동네 사람들과 극단을 꾸려 연극을 해보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프랭크는 직장에서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젊은 여자 직원과 노닥거리다 끝내는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하디흔한 결혼 이야기 아닌가 싶은데, 작가가 여기서 변주를 준다. 열심히 준비한 연극이 실패해 크게 상심한 듯했던 에이프릴이 돌연 프랭크에게 파리로 떠나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것도 잠깐 여행으로 가는 게 아니라 아주 살러 가자고. 처음에 프랭크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동안 회사 다니기 싫다는 말을 주야장천 한 터라 파리에선 에이프릴이 일하겠다는 말에 반대하지 못한다. 파리에서 에이프릴이 일하는 동안 프랭크는 공부를 하든 책을 읽든 글을 쓰든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니 그로서는 달콤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일단 프랭크는 에이프릴에게 파리에 간다고 한다. 파리에 갈 준비는 에이프릴이 다 한다고 하니 지켜보기로 한다. 


그런데 막상 떠난다는 선택지가 생기고 보니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회사가 그렇게 싫었는데, 어차피 그만둘 거라는 생각으로 업무에 임하자 생각 외로 일이 너무 잘 풀렸다. 잠깐 한눈팔 생각으로 만났던 여자 직원과는 점점 관계가 깊어졌다. 그런 프랭크의 속내를 모르는 에이프릴은 조만간 파리로 뜬다는 꿈에 부풀어 전보다 더 열심히 현모양처 역할을 해낸다. 그런 아내가 사랑스러워 부부관계를 맺었다가 에이프릴의 몸에 셋째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에이프릴은 계획이 틀어져서 미칠 것 같은데, 프랭크는 계획이 틀어진 게 오히려 기쁘고 반갑다. 그렇게 두 사람의 입장 차이가 점점 더 커지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결국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생각이 많이 났다. 프랭크는 최고의 남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최악의 남편도 아니다. 경제적으로 능력 있고 1960년대 남성 치고는 가정적인 편이다. 아내가 연극하는 걸 말리지도 않았고, 아이들에게 잘못한 적도 없다. 하지만 에이프릴은 프랭크의 아내로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다. 아마도 문제는 프랭크가 아니라 '아내'라는 역할이었을 것이다. 에이프릴처럼 한때는 배우를 꿈꾸기도 했던 아름답고 똑똑하고 능력 있는 여자가 고작 '집안의 천사'로 늙어 죽는다니. 어떤 남자가 이런 삶을 살까. 이런 삶을 꿈꿀까. 셋째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에이프릴이 전에 없이 절망한 건, 파리에 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결혼의 족쇄가 더욱 강력해졌기 때문일 것이다(전래 동화 '선녀와 나무꾼'이 생각나는...). 


이 소설은 주인공인 프랭크와 에이프릴의 캐릭터도 흥미롭지만, 주변 인물로 등장하는 이웃들 - 캠벨 부부, 기빙스 부인과 아들 존 기빙스 - 의 캐릭터도 인상적이다. 특히 존 기빙스는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프랭크, 에이프릴과 비슷한 연배임에도 불구하고 직장도 없고 배우자와 자식도 없지만, 누구보다 빠르고 예리하고 이들 부부의 문제점을 간파하고 각자의 속마음을 알아챈다. 프랭크, 에이프릴과 친하게 지내는 캠벨 부부는, 겉보기에는 프랭크와 에이프릴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 보이고 실제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면도 있지만, 결코 그들이 자신들보다 잘 살기를 바라지는 않고 그들의 불행을 보면서 자신들을 위안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인간성의 이면 또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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