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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의 책다락
  • 범죄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 이야기
  • 루시 워즐리
  • 27,000원 (10%↓1,500)
  • 2026-01-14
  • : 3,777



어릴 때는 위인전을 많이 읽었고 어른이 된 후에는 평전이나 자서전을 종종 읽었는데, 이제까지 내가 가장 많은 평전이나 자서전을 읽은 인물이 애거사 크리스티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애거사 크리스티의 삶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영국의 역사학자 루시 워즐리가 쓴 애거사 크리스티 평전 <범죄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 이야기>를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또는 생각하게 된 사실이 아주 많다. 전에 읽은 애거사 크리스티 평전이나 자서전에 비해 작가가 취재, 분석한 내용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존에 알려진 내용을 작가가 새로운 관점에서 제시하는 대목도 많아서인 것 같다. 


일단 잘 알려딘 대로 애거사 크리스티는 1890년 영국 상류층 가문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그 시대 여성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정식으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고 이 사실을 애거사 크리스티 본인도 아쉬워했던 건 알았는데, 11살 위의 언니는 대학 교육을 받았고 그 결과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큰딸을 못마땅하게 여긴 어머니의 결정으로 애거사는 학교 교육을 받는 대신 어려서부터 신부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았다는 사실은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그래도 (독서가에 글 잘 쓰는) 언니의 영향으로 애거사도 어릴 때부터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했고 그 결과 작가가 되었으니 역시 될 사람은 되는 건지도. 물론 애거사 크리스티는 스스로 작가라고 명명한 적이 없고, 할 수만 있었다면 전통적인 여성의 삶(현모양처)을 살고 싶어 했다지만(이게 애거사 크리스티의 본심, 진의였는지에 대해서도 저자는 의문을 제기한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1926년 실종 사건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다룬다. 작가는 남아 있는 당시의 기록과 자료들을 바탕으로 그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추측하는 한편으로, 그때 경찰이 어떤 식으로 잘못된 대응을 했고 언론은 얼마나 악의적인 보도를 했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대중의 오해와 편견이 그 후에도 얼마나 오랫동안 애거사 크리스티를 괴롭혔는지에 대해서도 서술한다. 이 사건으로 일종의 마녀화가 된 애거사 크리스티는 철저히 자기 자신을 감추거나 다른 이미지를 덧씌우는 방식으로 작가 활동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고, 이는 그가 작품성과 대중성을 다 잡은 몇 안 되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평가절하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러나 아무리 저평가 되는 작가라도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이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는 건 사실이고, 이것이 가능했던 건 단순한 우연이나 운의 작용이 아니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상류층 출신이지만 십 대 후반에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 그 시절 여성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살 수도 있었지만, 첫 번째 남편과는 이혼하고 (한참 연하인) 두 번째 남편은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평생 스스로 돈을 벌어야 했고, 부양 가족이 늘면서 점점 더 많은 돈을 벌 필요가 있었다. 잘 팔리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잘 써야 했고, 잘 쓰기 위해서는 계속 쓰고 많이 쓰는 수밖에 없었다. 계속 쓰고 많이 쓰려면 글감이 필요한데, 세상은 마침 전쟁 중이었고 애거사 크리스티 자신에게도 (출산, 실종, 이혼, 병원 근무, 약제사 공부 등) 많은 일이 일어났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이 그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소설 곳곳에 그의 직간접적인 경험이 들어 있다. 실제로 애거사 크리스티는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일종의 자전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소설들을 비롯해, 애거사 크리스티의 어떤 경험이 어떤 작품에 어떤 식으로 반영되어 있는지도 이 책에 나온다. 시대별로 대표작은 무엇이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 분석한 대목들도 좋았다. 작가의 나이가 일흔, 여든을 넘기면서 작품성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고 쓴 대목은 안타까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 연세에도 계속해서 글을 쓰며 작가이기를 그만두지 않았다는 것이니 존경스럽다.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을 더욱 깊이 읽고 싶은 독자에게 유용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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