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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의 책다락
  • 성스러운 동물성애자
  • 하마노 지히로
  • 18,000원 (10%↓1,000)
  • 2022-12-31
  • : 1,935



독서의 목적은 뭘까. 내 생각에 나는 "내가 모르는 세계를 알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내가 살아본 적 없는 타인의 삶, 내가 해본 적 없는 공부나 직업, 내가 경험해본 적 없는 감정이나 상태를 간접적으로라도 알고 싶어서 책을 읽고, 계속해서 더 많은 책을 읽기를 원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목적에 거의 완벽하게 부합하는 책이었다. 일본의 문화인류학자 하마노 지히로가 쓴 <성스러운 동물성애자>. 나는 이 책을 민음사 팟캐스트 <민음사 라디오> 중에서 '세영새벽의 물음표'를 통해 알게 되었다. 김세영과 신새벽, 두 분의 편집자가 입을 모아 이 책을 극찬하셔서 읽지 않고 배길 수 없었다. 


이 책은 '동물성애'라는 많은 이들에게 아직 낯선 개념을 소개하는 역할로서도 탁월하지만,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만큼 책 자체가 잘 읽히고 흥미진진하다. 저자 하마노 지히로는 (훗날 남편이 되기도 한) 애인에게 10년 동안 성폭력을 당했다. 저자는 사랑한다면서 폭력을 휘두르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고, 섹스라는 행위가 고도의 행복과 쾌락을 준다는 말을 납득할 수 없었지만, 무엇보다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건 그런 그를 떠날 수 없었던, 떠나지 못했던 자기 자신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사랑과 섹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39세에 교토대학 대학원 문화인류학과에 진학해 섹슈얼리티에 공부하기로 했다. 어느 날 교수가 저자에게 연구 주제로 '동물성애'를 제안했고, 그렇게 저자는 동물성애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채로 연구를 시작했다.


저자는 먼저 일본에서 동물성애자를 찾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지만, 일본에서 스스로 동물성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저자가 연구하고 싶은 동물성애자와 거리가 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저자는 독일로 가서 동물성애자 협회 '제타'의 멤버들과 접촉해 몇 년에 걸쳐 그들과 교류하며 '주파일'의 세계를 연구했다. 주파일이라고 하면 인간과 동물이 종 구분을 뛰어넘어 사랑하고 섹스하는 걸 떠올리겠지만, 저자가 만난 주파일들의 경우는 일반화하기 어려울 만큼 저마다 달랐다. 사람마다 욕망을 느끼는 동물의 종류가 다르고, 성관계 여부도 다르고, 역할(액티브-패시브)도 달랐다. 인간이 동물에게 욕망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동물이 먼저 인간에게 욕망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 그런 동물의 욕망을 인간이 받아주면서(?) 관계가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책에는 (나로서는) 상상을 뛰어넘는 온갖 사례가 나오는데, 저자는 이 사례들을 직접 청취하고 분석, 고찰하면서 애초에 사랑이란 무엇이고 섹스란 무엇인가,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가령 어떤 주파일은 동물 파트너와의 대등성을 중시해 파트너(개)가 자신의 손을 물어 피가 철철 나도 화를 내지 않고 훈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와 달리 저자가 10년 동안 사귄 (DV 가해자) 애인은 저자를 사랑한다면서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욕하고 때리고,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강요하며 저자를 (자신과 대등한 인간이 아닌) 성적 도구로 이용했다. 과연 어느 쪽이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으며 어느 쪽이 더 '인간'다운가.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싶고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가.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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