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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의 책다락
  • 쓰는 사람
  • 백희성
  • 16,920원 (10%940)
  • 2026-01-30
  • : 8,224



나에게 '쓰는 사람'은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었다.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글씨를 잘 쓰는 친구가 부러웠고, 학년이 높아지면서는 필기를 잘하는 친구들의 노트를 열심히 들춰봤다. 백일장에 낼 논설문이든 친구한테 쓰는 편지든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늘 부러웠는데, 이제는 잘 쓰든 못 쓰든 간에 계속 쓰는 사람, 꾸준히 쓰는 사람이 더 부럽다. 이를테면 매일 일기를 쓴다거나, 해마다 쓴 다이어리가 한 박스라거나, 글감을 모은 노트가 수십, 수백 권이라거나... <쓰는 사람>의 저자 백희성은 자칭 타칭 '기록광'이다. 저자는 2002년부터 기록을 시작해 20여 년 간 80여 권의 노트를 썼다. 방법은 단순하다. 마음에 드는 노트나 수첩에 인상 깊게 본 글귀와 그림, 머릿속에 떠오르는 작은 생각이나 의문들을 그냥 적는다. 


적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답을 찾을 가능성도 낮아지지만, 적으면 기억하게 되고 답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가령 어느 비 오는 날 저자는 노트에 '빗소리가 싫다'고 적었다. 써놓고 보니 왜 싫은지 궁금해졌고, 궁금증을 풀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빗소리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좋아한다면(안 좋아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그 결과 저자는 빗소리가 사람들에게 연상시키는 다양한 이미지나 생각, 감정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를 활용해 '빗방울 실로폰'이라는 발명품을 만들어 공모전에 입상했다. '싫음'을 '좋음'으로 바꾸고 커리어에도 플러스가 된 일거양득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이런 식으로 저자가 평범한 기록을 실질적인 결과로 만들어 낸 과정 및 케이스가 다양하게 나온다.


기록은 저자가 건축가이면서 소설가, 디자이너로도 활동하게 된 계기도 만들었다. 저자는 파리 유학 시절 센 강변에 있는 시테 섬의 한 고택에서 나오는 노신사를 보고 문득 그 집의 역사가 궁금해졌다. 보통 사람이라면 궁금해한 다음 금방 잊어버렸을 텐데 저자는 평소에 하던 대로 노트에 기록해 두었고, 의문을 풀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책에 과정이 자세히 나온다) 첫 번째 장편소설 <빛이 이끄는 곳으로>를 완성하게 되었다. 디자이너가 된 건 저자가 운영하는 건축사 사무소에 자꾸만 엉뚱한 의뢰를 해오는 의뢰인 때문이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그의 의뢰를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기록 덕분이었다. 이 부분도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다. 이 책 내용 전체를 드라마로 만들어도 괜찮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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