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앤 패칫의 산문집 <할머니, 개, 그리고 죽도록 쓰기>를 읽은 이후로 앤 패칫의 책을 벌써 네 권째 읽었다. 소설은 <커먼웰스> 이후로 두 권째인데, <커먼웰스>와 <더치 하우스> 둘 다 작가의 가족사를 반영한 내용이라 비슷할 것 같았지만 읽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혀 관련 없는 내용도 아니라서(작가의 부모는 작가가 어릴 때 이혼해 각각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렸다. 내 생각에 <커먼웰스>는 어머니쪽 가정에서의 일을, <더치 하우스>는 아버지쪽 가정에서의 일을 바탕으로 한 것 같다.) 앤 패칫이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 세계가 궁금한 독자라면 반드시 두 권을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미국 필라델피아. '더치하우스'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대저택에 누나인 메이브와 남동생 대니가 살고 있다. 남매의 아버지는 지역의 유명한 부동산 업자이고 어머니는 몇 해 전 집을 떠났다. 어머니는 안 계시지만 아기 때부터 돌봐준 가사 도우미들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즐겁게 살고 있던 남매 앞에 어느 날 불청객이 나타난다. 얼마 후 아버지와 결혼해 새어머니가 될 앤드리아와 그의 두 딸 노마와 브라이트이다. 메이브와 대니는 노마, 브라이트와는 잘 지냈지만 그들의 어머니인 앤드리아와는 잘 지낼 수 없었고 이는 앤드리아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메이브는 대학 진학을 기회로 집을 떠나고, 혼자 남은 대니는 불편한 생활을 이어가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집에서 아예 쫓겨난다.
여기까지만 보면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란 소년, 소녀가 부모의 부재, 계모의 학대로 인해 집을 잃고 신분 하락을 겪는, <신데렐라>나 <소공녀>를 연상케 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메이브는 부잣집 딸로 자라다 명문대에 다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소녀 가장이 되어 학업을 포기하고 직장에 다니며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대니는 다행히 아버지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남긴 유산을 받아 명문 기숙학교를 나오고 메디컬 스쿨에도 진학하지만 그 자신은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고, 남들 보기에는 좋아 보였을지 몰라도 스스로는 돈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하고 반대로 하고 싶은 일은 못 하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오랫동안 보낸다.
그런 두 사람에게는 (남들이 보기에는 기괴하고 이상하지만 그들 자신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취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이 날 때마다 어릴 때 살았던(그러나 지금은 들어갈 수 없는) 더치하우스 앞에 차를 대놓고 그 집을 지켜보는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준비도 없이 떠나야 했던 그 집을 추억하고 그들로부터 그 집을 빼앗은 계모를 욕하기 위해 그렇게 했지만, 세월이 흐른 후 그들은 그렇게 매번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기억 자체가 그들에게는 '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같은 부모에게서 나고 자랐고 혈연이라고는 둘밖에 없어서 누구보다 끈끈한 누나와 남동생 사이라도, 각자의 경험과 가치관, 입장과 상황에 따라 어떤 사람 또는 어떤 사건을 보는 시각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도.
메이브와 대니의 삶을 보면, 어떤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사는 것이 그 자신의 선택인지 아니면 환경의 영향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메이브와 대니는 둘 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고 똑같이 (아버지를 닮아) 셈에 밝았는데, 메이브는 우수한 성적으로 수학과를 졸업하고도 작은 회사의 회계 담당 직원으로 일하며 대니의 뒷바라지를 하고, 대니는 의사로서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아버지를 따라) 부동산업에 뛰어든다. 다시 말해 메이브는 어머니가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했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어머니처럼 남을 위해 살았고, 대니는 (누가 보더라도) 아버지처럼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들이 부모와 계속 같이 살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래도 같은 삶을 살았을까. 그들 누구와도 다른 삶을 택한 대니의 딸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