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보>의 시놉시스를 듣고 딱 내 취향일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원작이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이라는 걸 알고 이건 뭐 내 취향일 수밖에 없겠다고 확신했다. 영화는 개봉 시기를 놓쳐서 못 보고 소설 먼저 읽었는데, 소설이 너무 좋아서 영화는 안 봐도 되겠다 싶지만 보게 되면 보겠지. (어서 OTT에...)
소설은 도쿄 올림픽을 한 해 앞둔 1963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시작된다. 야쿠자 조직의 보스 '타치바나 곤고로'의 외아들인 '키쿠오'는 가부키를 좋아하는 계모의 영향으로 가부키 공연을 자주 보러 다니고 가부키 배우 흉내도 곧잘 한다. 나가사키의 내로라 하는 야쿠자 조직의 조직원들이 모두 모이는 신년회에서 여흥으로 짧은 가부키 공연을 하게 된 키쿠오. 그 모습을 우연히 그 자리에 참석한 오사카를 대표하는 가부키 배우 '하나이 한지로'가 보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하나이의 눈에 든 키쿠오가 그 길로 가부키에 입문해 배우로 성장하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직 많은 일들이 남아 있다.
우선 바로 이 날 야쿠자 조직 간에 싸움이 일어나 키쿠오의 아버지 곤고로가 세상을 떠나고, 그 때까지 기세가 등등했던 곤고로의 조직도 힘을 잃는다. 그 전까지 도련님 소리를 들으며 유복하게 살았던 키쿠오는 당장 중학교 졸업도 힘든 상황에 놓인다. 나이는 키쿠오보다 위지만 키쿠오의 심복, 오른팔 역할을 하는 토쿠지도 소년원에 갇혀 있다. 사실 키쿠오는 여자친구 하루에의 집에 얹혀 살고 있는 신세. 이런 와중에 소년원에서 탈출한 토쿠지가 키쿠오를 찾아와 복수심을 자극하고, 일련의 소동 끝에 도망치는 신세가 된 키쿠오는 토쿠지와 함께 오사카로 가서 약간이나마 안면이 있는 한지로의 문하에 들어가 배우 수업을 받는다.
배우 수업을 받는다고 해도 한지로의 후계자는 한지로의 외아들 슌사쿠가 이어받는 것으로 사실상 정해진 상태. 그러나 돈도 없고 돌아갈 고향도 없어진 키쿠오로서는 장래고 뭐고 그저 열심히 수업을 받아서 하루 빨리 한 사람 몫을 하는 배우가 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키쿠오에게는 한지로도 인정한 미모와 천부적인 재능이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가부키(그리고 연기, 예술)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 향상심이 있다. 이것이 여러 면에서 키쿠오와 정반대(출신 배경과 외모, 성격 등)이면서 꼭 닮은(연기와 예술에 대한 열정, 집착 등) 슌사쿠의 특징과 상호 작용을 하면서, 서로의 연기 인생, 나아가 인생 전체에도 큰 영향을 준다.
아직 안 봤지만 영화에선 키쿠오와 슌사쿠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소설에서도 그렇지만, 사실 나는 이 소설의 진히로인은 토쿠지라고 생각한다. 일단 아버지가 죽은 후 조용히 살고 있던 키쿠오를 자극해 복수를 감행하고 고향을 떠나게 만든 게 토쿠지이고, 키쿠오가 어떤 문제에 휘말리거나 휘말릴 뻔할 때마다 자신을 희생해 키쿠오를 구하기 때문이다. 키쿠오와 슌사쿠의 관계가 <패왕별희>라면 키쿠오와 토쿠지의 관계는 <영웅본색>이랄까... 소설의 결말도 토쿠지와 관련이 있는데 영화는 등장 인물 소개에도 토쿠지의 이름이 없어서, 소설과 영화의 결이 약간 다를 것 같다는 짐작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