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읽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데 주변에 그럴 사람이 없어서, 열심히 읽은 책의 내용이나 감상이 휘발되는 게 아까워서, 개인 블로그에 독후감 비슷한 리뷰를 남기기 시작한 게 17년 전의 일이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다른 취미 활동은 쉬거나 그만두어도 책 리뷰 쓰기만은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첫째로 책을 계속해서 읽었기 때문이고, 둘째로 지금보다 더 나은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글이 지금보다 더 나은 글이고 내가 쓰고 싶은 서평의 형태일까. 인문출판사 글항아리 편집장 이은혜의 서평집 <살아가는 책>을 읽으며 나도 이런 글을, 이런 서평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독자가 읽고 싶게 만드는 서평의 기본적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뿐 아니라 저자가 직접 경험했거나 인터뷰를 통해 취재한 내용을 더해 책 속의 현실과 우리(저자와 독자)가 속한 현실을 연결한 것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영국의 역사학자 시어도어 젤딘의 책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읽으며 이 책에 나오는 가사도우미 쥘리에트의 사연과 자신의 살림을 도와주는 가사도우미 이성미 씨의 사연을 겹쳐 본다. 가사도우미와의 관계를 고용주와 고용인의 그것으로만 생각했다면, 그와 대화를 나눌 생각도 못했을 것이고, 그가 이 집에서 일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험난한 과정을 거쳤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중년, 여성, 가난, 육체 노동자 같은 일종의 태그들로 그를 납작하게 보고 얄팍한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독일의 철학자 한스 블루멘베르크의 책 <난파선과 구경꾼>을 읽으며 자신이 만난 친족 성폭력 피해자를 떠올리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당한 고통을 글로 써서 책으로 낼 만큼 강한 사람이었지만, "단말기에 카드를 '삽입'하라"는 일상적인 문장에도 얼굴이 파래질 만큼 피해를 현재 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글을, 그가 겪은 피해와 고통을, 이야기로 사연으로 책으로 교훈으로 소비하는 것은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가. 스스로 '구경꾼'이라고 자조하면서도 계속해서 이런 책을 찾아 읽고(저자의 경우 '만들고') 또 그래야 하는 이유는 뭘까.
이탈리아의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책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읽다가 출판인들과 함께 영국의 에든버러를 여행했을 때의 일화를 떠올리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어떤 장소는 실제로 그 장소에 존재하는(또는 존재했던) 지형이나 지물뿐 아니라 그 장소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나 사건 등으로 더 오래 기억되기도 한다. 나에게도 그런 장소들이 있는데, 인간은 왜 기억하고 싶은 건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잊으면서 잊고 싶은 건 계속해서 기억할까. 이런 식으로 어떤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읽은 책에서 그 답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새로운 질문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책 읽기, 글쓰기를 한 점이 멋지고 본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