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은 예측불허다. 그래서 괴롭지만 그래서 즐겁기도 하다. 백수린의 소설집 <봄밤의 모든 것>에는 인생의 예측불허한 면 때문에 기대하지 않은 경험을 하고 예상하지 못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나온다. <아주 환한 날들>의 70대 여성 '옥미'는 사위가 맡기고 간 앵무새 때문에 뜻밖의 시간을 보낸다. 처음에는 사이도 좋지 않은 딸 부부가 혼자 사는 자신의 집에 낯선 새를 맡기고 간 게 마뜩잖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정성을 다해서 생명을 돌보는 시간을 가지니 오래전 딸을 키우던 때가 생각이 나기도 하고, 앵무새와의 산책 시간이 스스로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빛이 다가올 때>의 '나'는 뉴욕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다. 대학교수인 여덟 살 위의 사촌 언니도 마침 뉴욕에 오게 되어 자주 만나 시간을 보낸다. '나'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늘 비교 대상이 되었던 언니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한편으로, 아픈 엄마를 간병하느라 젊은 시절을 다 흘려보낸 언니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도 있다. 그런 언니가 자신보다 한참 어린 외국인 남성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나'는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언니가 힘들게 찾은 사랑을 지지해 주고 싶지만 지지해 주고 싶지 않은, 지지해 줄 수 없는 이 마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봄밤의 우리>의 '나'는 프랑스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유학 시절 '나'는 한 일본인 남성과 가깝게 지냈는데, 그는 부모님 간병을 이유로 유학 생활을 접고 급하게 귀국했다. 당시 '나'는 창창한 미래를 포기하고 떠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 자신도 반려견을 무지개다리 너머로 떠나보내는 경험을 하고 나니 그의 선택이 이해가 된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정으로 소중한 존재가 생긴 사람에게는 돈이나 커리어 같은 보편적으로 선호되는 가치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의 이야기로 읽혔다.
<흰 눈과 개>도 비슷하다. 이 소설의 화자인 중년 남성은 스위스에 사는 딸을 만나러 간다. 오래전 그는 딸이 결혼하겠다는 남자가 마다가스카르 출신 입양아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고, 그 때문에 오랫동안 딸과 소원했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딸 부부의 집을 방문했지만, 여전히 딸과는 어색하고 사위는 마뜩잖다. 그런 그가 우연히 들른 한 카페에서 다리 하나가 없는데도 하얀 눈밭을 신나게 뛰어다니는 개를 보고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 삶에는 내 마음에 드는 일만 있을 수 없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일도 받아들이고 즐겁게 사는 것이 최선이라는, 그런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삶은 유한하고 불행은 도처에 있으므로 기쁨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이 그만큼 귀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은 이어지는 작품들에서도 읽힌다. <호우>의 '소희'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집의 노인이 고독사했다는 말을 듣고 깊은 상실감을 느낀다. <눈이 내리네>의 '다혜'는 대학 시절 하숙을 했던 이모할머니 집을 오랜만에 방문해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의 대학 친구 넷은 네 살 된 딸을 잃은 주미가 독일 체류 중에 겪은 기묘한 사건에 관해 듣는다. 어두운 벽장 안에서 소음을 일으키는 어떤 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일어날 일을 모두 알 수 없고, 안다 해도 그 의미를 깨닫는 건 나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