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에 한 시간씩 집 근처 공원을 걷는다. 일정이 많거나 날씨가 너무 궂은 날에만 쉬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낮이든 밤이든 새벽이든 무조건 나가서 걷는다. 처음에는 부족한 운동량을 채우려고 걸었지만 이제는 걷기가 체력 증진뿐 아니라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느껴서 걷는다. 걷다 보면 실내에만 있을 때에는 몰랐던 날씨의 차이나 계절의 변화도 감각하게 되고, 평소에는 눈여겨보지 않던 꽃과 나무도 보게 되고, 주변에서 나는 소리와 냄새에도 민감해진다. 운이 좋은 날에는 공원에 상주하는 고양이도 보고, 더욱 운이 좋은 날에는 청설모나 고라니도 본다. 걷지 않았을 때에는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세계다.
시인 정고요의 산문집 <산책자의 마음>을 읽으며 산책을 즐기는 저자의 마음이 공원에서 걸을 때의 나의 마음과 아주 많이 닮아 있다고 느꼈다. 저자는 이 책에서 2014년 강원도로 이사한 이후의 자신의 산책 풍경을 소개한다. 강원도를 매우 사랑해서 강원도로 이사 온 2014년부터 자신의 나이를 다시 계산해 '열한 살'이라고 말할 정도인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강원도는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 지나치게 높은 건물도 별로 없어서 걷기에 아주 좋다. 저자가 특히 애정하는 강릉에는 좋은 카페도 정말 많아서 걷다가 지치면 잠시 들러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다.
책에는 저자가 사랑하는 강원도에서, 사랑하는 산책을 즐기는 방법이 여럿 나온다. 해변을 산책하고 나면 저자는 집에 돌아와 목록을 적는다. 모양이 훼손되지 않은 조개껍데기나 볕의 감촉이 남아 있는 돌멩이처럼, 해변을 걸으면서 발견해 주머니에 넣어 가져온 수확물(?)들을 하나씩 기록하는 것이다. 그렇게 저자가 '곁'을 준 것들은 훗날 저자가 쓰는 시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언젠가 재킷 주머니에서 발견되어 예상치 못한 웃음을 주기도 한다. "시를 짓는 것은 때로는 해변에서 조개껍데기를 줍는 일과 같다. 무한에서 하잘것없는 유한의 집을 짓는 일, 그리고 다시 무한으로 나아가는 일." (15쪽)
산책을 하면 번잡한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글이 잘 안 풀릴 때 산책을 하면 주위 환기와 생각의 정리에 도움이 된다. 일하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낼 때 산책을 하면 '해야 한다'는 당위에서 벗어나 무위로 돌아가는 데 효과적이다. 산책을 하면서 얼마 전 싹을 틔운 나무에서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잎이 지고 꽃이 시들고 열매가 떨어져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보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 겸허함과 인내심을 가르친다. "우리는 우리가 걷는 풍경을 닮을 뿐이다."(36쪽) 매일 산책을 하면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산책의 의미와 효과를 제대로 알게 해준 이 책이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