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를 이틀 앞두고 그동안 밀린 리뷰를 쓰기로 한다. <마이너 필링스>는 2021년에 나온 책이고,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고, 책 고르는 안목을 믿는 분들에게 이 책 좋다는 말을 많이 듣기도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제야 읽었다. 읽어보니 과연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책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과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책은 아무리 늦어도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저자 캐시 박 홍은 197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국인 이민자 부부의 딸로 태어난 한국계 이민 2세대 작가다. 최근에 읽은 에드워드 리(이균) 셰프의 책 <버터밀크 그래피티>에도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같은 이민자 가족 안에서도 1세대와 2세대의 경험이 다르고, 2세대와 3세대의 경험이 다르다고 한다. 1세대는 이민 간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후천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자신의 언어와 문화로 느끼지 못하며 차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반면, 2세대는 그 나라에서 태어나 그 나라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피부색이 다르거나 약간의 문화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는 데에서 극복하기 어려운 무력감, 좌절감을 느낀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에서 아시아인으로 살면서 느낀 크고 작은 차별에 대해 소개한다. 가령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인은 머리가 좋고 근면 성실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는 결코 칭찬이 아니다. '아시아인은 어떠하다'는 식의 '딱지'는 '흑인은 어떠하다', '백인은 어떠하다'는 식의 평가와 마찬가지로 인종 차별적이며, 그렇게 '우수하고' '유능한' 아시아인을 정부나 기업의 요직에 앉히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에서 기만적이기까지 하다. 아시아인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아시아인들이 스스로를 '볶아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령 아시아인은 수학을 잘하고 명문대 진학률이 높다는 이미지 때문에 수학을 못하거나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한 아시아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차별은 어디에나 있고 범죄에 대해서도 그렇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과 같은 한국계 미국 이민 2세대 작가이자 시인인 차학경이 1982년 자신의 첫 저서 <딕테>를 출간한 지 3일 후 뉴욕의 한 건물 지하실에서 강간, 살해 당한 사건을 소개한다. 당시 경찰은 가족의 신고를 받고도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는데, 만약 백인 여성이 피해자였다고 해도 경찰이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 아니 애초에 차학경이 백인 남성, 아니 남성이기만 했어도 이런 일을 당했을까. 이 사건을 보면서 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고, 그 나라의 언어를 능통하게 구사하고, 남부럽지 않은 학업적, 직업적 성취를 해내도 이러한 폭력 앞에선 무력하다는 것에 저자를 비롯한 수많은 이민 2세대 여성들이 절망감을 느낀 것이 이해가 된다.
한 국가, 한 사회에서 약자, 소수자로 산다는 것은 강자, 다수자가 독점한 권리를 공유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이 행사하는 폭력에 그대로 노출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한없이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내가 선택하지 않았고 바꿀 수도 없는 피부색이나 성별 같은 요인 때문이라면 더욱 괴롭다. 고통 받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과연 잘 사는 나라일까.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사회를 과연 좋은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한국이 점점 더 미국을 닮아간다고 느끼는 시점에 이 책을 읽어보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