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학생 소년 쓰키자와 리쿠마는 도서관에서 이상한 체험을 한다. 어떤 여자가 멀리서 작은 공을 굴려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것을 막고,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에 당황한 리쿠마에게 언제 비가 그칠 테니 그때 도서관을 나서라고 말해준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전직 경찰관인 리쿠마의 아버지가 강가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아버지 이외에 가족이 없는 리쿠마는 혼자서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숨겨온 어떤 비밀을 알게 되고, 그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일전에 도서관에서 만난 이상한 여자와 재회한다. 그 여자의 이름은 우하라 마도카. 평범한 여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인데...
<마녀와의 7일>은 2015년부터 현재까지 총 3권이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라플라스 시리즈' 제3권에 해당한다. 어쩌다 보니 시리즈 1,2권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3권 <마녀와의 7일>부터 읽었는데 이 <마녀와의 7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일단 도입부가 매우 흥미로웠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시리즈 1,2권을 읽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주인공 우하라 마도카가 가진 능력에 대해 알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주인공이 우하라 마도카인지조차 몰랐다. 사실상 리쿠마와 다르지 않은 상태에서 마도카가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니 그야말로 홀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 초반에 제시되는 현대 일본 경찰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정보 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경찰 수사에 필요한 정보 수집 및 처리는 물론이고 수사 과정 자체에도 인터넷, 모바일, AI 등이 다방면으로 활용되는 것까지는 좋은데, 이 과정에서 인간의 역할이 줄어들어 수많은 경찰이 자리에서 밀려나고 인간 특유의 감이나 지혜 같은 것이 발휘될 여지가 줄어들었다. 이것이 지금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지 아니면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작가가 예상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이 소설에 따르면 경찰과 최신 과학 기술의 만남은 긍정적인 면만큼 부정적인 면도 많은 것 같다.
리쿠마의 서사도 감동적이다.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다가 이번에는 아버지까지 잃은 중학생 소년 리쿠마는 갑자기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아버지의 죽음보다도 당장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가 걱정이다. 이런 와중에 경찰과는 다른 방식으로 범인을 찾아내 사건을 해결해 주겠다고 나선 우하라 마도카라는 여성을 만나 이런저런 모험을 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며칠 전에 아버지를 여읜 소년이 이런 일들(카지노에 간다든지 여장을 한다든지)을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지만, 유흥이나 현실 도피 목적이 아니라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과정을 통해 리쿠마 자신이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니 불행 중 다행이랄까.
시리즈 1권 <라플라스의 마녀>와 2권 <마력의 태동>에서는 뇌의학을 통해 슈퍼컴퓨터에 상응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 우하라 마도카를 통해 의학 또는 과학의 우수성 또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시리즈 3권 <마녀와의 7일>에 이르러서는 의학 또는 과학이 범접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나 잠재력을 보여주는 식으로 입장이 변화한 점도 인상적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 자신이 공학도 출신이기도 한 만큼 과학 지식을 활용하는 범죄 수사물을 다수 발표해 왔는데, 자신의 100번째 작품인 <마녀와의 7일>에 이르러서는 과학의 한계를 역설하니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