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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의 책다락
  • 의미들
  • 수잰 스캔런
  • 19,800원 (10%1,100)
  • 2025-10-27
  • : 1,900



나의 십 대는 고통이었고 나의 이십 대는 고독이었다. 나의 삼십 대가 그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 회복하는 시간이 된 것은, 팔 할이 독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십 대 중반부터 오락이나 취미 수준이 아니라 중독된 사람처럼 '읽어치운' 책들은, 오랫동안 나를 잠식했던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고립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주변의 기대에 맞추어 살기보다 나답게 사는 법에 대해 고민하도록 이끌어주었다. 미국의 여성 작가 수잰 스캔런의 책 <의미들>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저자는 이십 대 초반에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후 3년 간 정신병동에 입원한 이력이 있다. 당시 저자는 가족들이 사는 시카고를 떠나 뉴욕에 있는 대학에 다니며 외롭게 생활했다. 자기 몸을 엄격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나쳐 거식증도 앓았다. 유일한 대화 상대였던 남자친구는 자살 충동을 가진 사람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의사를 만나본 적도 있는데, 그들은 하나 같이 '히스테리'라고(여성혐오적 표현이지만 1980년까지 미국정신의학협회의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남아 있었다), 야외에서 햇볕을 받으며 운동하고 세 끼를 잘 챙겨 먹으면 호전될 거라고 말했다.


그 때로부터 삼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그 시절 저자가 사로잡혀 있던 감정이나 생각, 고수했던 생활 방식이나 습관이 잘못이었다는 걸 안다. 그러나 그걸 알려준 건 정신의학이 아니라 저자가 읽은 책들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을 만든 여성 작가들의 책을 소개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 나왈 엘 사다위의 <우먼, 포인트 제로> 등이다. 이 책들의 공통점은 모두 여성 작가가 쓴 소설이고, (당연하게도) 여성과 여성의 삶을 다룬다는 것이다. 이 책들은 먹지 못하는 저자를 먹였고, 어둠 속을 걸어가는 저자에게 빛으로 출구를 제시했다.


책 읽기는 삶의 한 방식이, 혹은 사는 법을 찾으려는 탐색이 되었다. 젊은 여자가 책들의 영향, 독서의 영향을 받아 정체성을 형성하고 그 형태를 만들어가는 일은 쉽게 경시되지만, 그럼에도. 책 읽기는 내가 가진 것이었고 내겐 그것뿐이었다. 나는 잘난 체한다는 소리, 별종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은 이렇게 예술가가 된다. 당신은 오직 당신에게만 진실해진다. 당신이 알고 있던 것들, 남들에게 들은 의견들과 어린 시절부터 거쳐온 여러 정체성으로부터 떠나간다. (55쪽)


저자에게 독서는 단순한 치료, 치유 이상의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저자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할 정도로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책을 즐겨 읽었지만, 막상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의사가 '히스테리'라고 표현한 증상을 스스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그것을 외로움과 슬픔으로 인지하고 자신의 언어로 묘사할 수 있었다면, 젊은 시절의 소중한 3년을 병원에서 보내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독서는 그랬던 저자에게 자기만의 언어를 선사했다. 그리고 그 언어로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기록했다. 이제는 그 자리에 없는 병원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들과 지냈던 기억을.


당신은 자기 고통과 상심이 세계사에서 전례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다가 책을 읽는다. 나는 이 말을 이해했지만, 당시 그 말은 나를 치유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내 고통이 너무나 이상하고 새롭고 고유하고 절절해서 이전에 다른 누군가도 이렇게 느꼈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그랬다면 그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테니까. 나 또한 살아남지 못할 테고. (103쪽)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경험에 대한 책이라고 해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같은 내용을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정신병원에 입원한 경험 자체보다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고 수용하는 방법을 독서를 통해, 그중에서도 어떤 책들을 통해 배웠는지를 설명해 주는 책이라고 느꼈다. 그런 점에서 저자와 비슷한 경험이나 문제가 있는 사람뿐 아니라 독서와 책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고 삶을 더욱 제대로 보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오래오래 곁에 두고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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