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 형태는 한 가지가 아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형태와 다른 형태의 사랑을 하는 사람을 보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같은 말이 생긴 것은 사랑의 정의 혹은 범주가 그만큼 다양하고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일본 작가 나기라 유가 2017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신의 비오톱>은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보여준다.
우루하는 결혼한 지 2년 밖에 안 된 남편 '가노군'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엄마 대신 우루하를 키워준 이모는 더 늦기 전에 새출발하라며 맞선을 종용하는데, 가노군을 그리워 하는 우루하에게 이모의 '배려'는 폭력으로 느껴진다.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쉬고 있던 우루하는 툇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고 있는 가노군을 발견한다. 우루하는 가노군은 죽었고, 눈 앞에 보이는 가노군은 유령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가노군이 '없는' 것보다 가노군의 유령이라도 '있는' 편이 자신에게 더 낫다고 생각한 우루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가노군의 유령과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남편의 유령과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한 이후로 우루하에게는 신기한 일이 연달아 일어난다. 우루하는 남편의 유령과 사는 것보다 더 이상한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들여다 보니 세상에는 우루하처럼 남들에게 쉽게 이해 받지 못하는 사랑, 그래서 비밀로 감출 수밖에 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예쁜 사랑을 하고 있는 줄 알았던 커플이 알고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거나, 가노군과 저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노부부에게 엄청난 비밀이 있었다거나.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우루하는 남편의 유령과 함께 하는 생활을 좋아하면서도 '이대로 괜찮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의 답을 천천히 찾아간다.
나는 행복하지만, 이 행복은 이해하기 힘든 형태를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행복조차도 정해진 틀에 집어넣고 싶어 한다. (중략) 자신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사람에게 걱정이라는 대의명분으로 가볍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다. 말한 사람은 딱히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니 더욱 고약하다. (176쪽)
"설령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저는 다른 아이와 하루를 똑같이 사.랑.할.순.없.어요." 아직 어린 아키지만 확신에 찬 그 말에는 나도 마음 깊이 동의했다. 아키의 말 그대로였다. 나도 주위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 가노군을 똑같이는 사랑할 수 없다. 모두가 그럴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것만으로 불평등을 낳는다. (144쪽)
사실 나는 내가 다양한 사랑의 형태에 열려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몇몇 사랑은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피부색이나 국적이 다른 사람과의 교제나 혼인을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고, 같은 나라 사람이라도 어느 지역 사람과는 결혼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이십 대일 때는 서른 살이 되도록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노처녀'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노처녀라는 단어 자체가 사어(死語)가 되었다. 그러니까 과거의 상식이 지금은 틀릴 수 있고, 지금은 틀린 것이 나중에는 상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의 형태나 범주가 가변적이라면 중요한 건 시대나 사회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 사랑의 본질일 텐데, 사랑의 본질은 불평등 내지는 차별임을 지적하는 것도 이 소설의 멋진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궁극의 행위라거나 인류를 구원할 명약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사랑은 누군가(또는 무언가)를 위해 다른 것들을 포기하는(버리는)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도 사랑을 위해 안정적인 미래나 사회적 명예, 때로는 법까지 포기한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선택이 어리석거나 안타깝게 보이지만은 않고 어떤 선택은 위대하고 찬란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건, 포기하는 것의 가치(기회비용)가 클수록 사랑도 크다는 믿음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일까. 그런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내 안에 있는 걸까. 그래서 내가 사랑을 못하나. 그런 사랑을 내가 하고 싶나...? 이런 등등의 생각을 하게 하는 흥미로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