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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의 책다락
  • 잠자는 숲
  • 히가시노 게이고
  • 15,120원 (10%840)
  • 2019-07-25
  • : 1,660



어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졸업 : 설월화 살인 게임>을 다 읽고 다음 권인 <잠자는 숲>을 조금만 읽을 생각으로 펼쳤다가 새벽까지 읽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책에 빠져 잠을 잊은 게 얼마만인지. 요즘은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읽는 재미에 푹 빠져서 유튜브도 OTT도 안 보고, 트위터도 가끔 들어간다. 이제까지 읽은 소설 중에 최고인지 묻는다면 그 정도는 아닌데, 일단 읽기 시작하면 결말이 궁금해서 끝까지 읽게 된다.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 추리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로맨스도 있고 감동도 있다. 이보다 잘 쓰는 작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만큼 잘 쓰는 작가도 드물다. 그래서 지난 40년 동안 사람들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재미없다, 지겹다 욕하면서도 계속해서 읽어온 것 아닐까, 라고 뒤늦게 깨닫는 중이다.


<잠자는 숲>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1989년에 발표한 가가 형사 시리즈 제2권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이야기는 도쿄의 유명 발레단 사무실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피의자인 사이토 하루코는 발레단 소속의 발레리나로, 서류 작업을 하기 위해 밤늦게 사무실에 갔다가 강도를 맞닥뜨렸고 공포에 사로잡혀 손에 잡히는 물건을 휘두른 게 살인에 이르렀다고 진술한다. 발레단 사람들은 물론 경찰 내부에서도 정당방위로 보는 의견이 많았지만, 담당 형사인 가가의 생각은 다르다. 피해자가 정말로 금품을 노리는 강도였다면 발레단 사무실이 아닌 다른 장소를 노리지 않았을까. 이 와중에 또 다른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수사는 점점 미궁에 빠진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작가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편견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이다. 흔히 발레단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면 어떤 무용수가 다른 무용수의 재능을 질투하거나 배역을 탐내서 살인을 했을 거라고 짐작하기 쉽다. 발레를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부유한 집안 출신이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를 거라는 선입견 역시 존재한다. 가가 역시 그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수사를 진행하다 여러 번 막다른 길에 다다른다. 가가가 오랜 경력을 지닌 노련한 형사가 된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신참자>나 <기린의 날개>에서 최대한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수사에 임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이 같은 햇병아리 시절의 경험과 그로 인해 얻은 교훈 덕분이 아닐까 싶다.


범죄의 동기가 '악의'일 수도 있지만 '선의'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점도 흥미롭다. 보통 이런 범죄소설에서 범죄자는 누군가를 해쳐서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데 반해, 이 소설에서 가해자는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방식으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범죄자를 자처한다.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인 <용의자 X의 헌신>이나 <백야행>에서도 반복된다. 이런 점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범죄소설을 읽으면 서늘함, 잔혹함이 아닌 따뜻함, 아련함을 느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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