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참자>, <기린의 날개>를 연달아 읽고 가가 형사 시리즈의 매력을 뒤늦게 알게 된 나는 요즘 가가 형사 시리즈를 처음부터 읽고 있다. 가가 형사 시리즈는 1986년에 출간된 <졸업 : 설월화 살인 게임>을 시작으로 2025년 현재까지 총 11권이 출간되며 4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대표하는 추리 소설 시리즈이다. 시리즈 제1권인 <졸업 : 설월화 살인 게임>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십 대 시절에 발표한 두 번째 장편 소설로, 초기작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의 완성도와 이야기의 재미 모두를 탄탄히 갖추고 있다.
이야기는 T대학 졸업반인 여섯 명의 친구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국문과 4학년인 사토코는 고등학교 때부터 단짝인 나미카와 쇼코가 사는 여성 전용 기숙사에 놀러 갔다가 충격적인 광경을 본다. 자기 방에서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쇼코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곧바로 경찰이 출동해 현장을 조사하고, 사토코를 포함해 쇼코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 모두 경찰의 탐문 대상이 된다. 친구들은 쇼코가 죽은 이유에 대해 저마다 추리를 하는데 이중에는 사토코를 좋아하는 사회학과의 가가도 있다. 대학 검도부 1인자로 손꼽히는 가가는 아버지가 경찰인 만큼 친구들 중에서도 남다른 추리력을 보인다. 하지만 가가 자신은 경찰이 아닌 교사의 길을 지망한다.
<졸업 : 설월화 살인 게임>을 왜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이라는 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1985년 <방과 후>로 등단해 2025년 현재까지 40년 동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다. 발표한 작품이 다수이다 보니 완성도나 재미 면에서 편차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런 점 때문에 한동안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지 않기도 했는데, 오랜만에 그의 초기작을 읽으니 이 때부터 벌써 이렇게 잘 썼구나 싶고 새삼 그의 필력에 감탄했다. 일본의 전통 문화인 다도에서 종종 행해지는 게임의 예법을 활용한 트릭도 (다도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정확히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상당히 기발하고 신선하다고 느꼈다.
둘째는 가가 형사의 일반인(?) 시절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신참자>나 <기린의 날개>에 그려진 가가 형사의 모습은 노련하고 예리한 형사 그 자체의 모습이라서 경찰이 되기 전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실제로 <졸업 : 설월화 살인 게임>의 대학생 가가 교이치로는 교사를 지망하는 사회학과 학생으로, 몇 년 뒤 경찰이 되어 형사의 길을 걷게 될 인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가가가 대학 시절에는 어떤 생활을 했고 어떤 친구들과 어울려 지냈으며 어떤 스타일의 여성을 좋아했고 어떤 사건을 계기로 형사의 길에 조금씩 가까워졌는지 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을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