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리 소설을 여러 번 읽는 경우가 드문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기린의 날개>는 두 번 읽었다. 이 소설을 처음 읽은 건 2017년. 이 소설이 국내에 처음 출간되었을 때, 소설의 배경이 내가 가본 도쿄 긴자 니혼바시 부근이라고 해서 반가움과 호기심으로 읽어 보았다. 그 때 쓴 리뷰를 찾아 보니 니혼바시가 배경인 건 반갑지만 내용은 그저 그랬다는 식으로 썼는데, 솔직히 이번에 이 소설을 다시 읽고 느낀 감상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오히려 직전에 읽은 <신참자> 쪽이 참신하게 느껴졌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2021년에 발표한 자신의 데뷔 35주년 기념작 <백조와 박쥐>와 비슷하다는 인상도 받았다. 어떻게 비슷한지는 차차 쓰는 것으로...
소설은 도쿄 도심 한복판에 있는 니혼바시 다리에서 중년 남성이 칼에 찔려 죽은 채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두 시간 후 근처 도로에서 한 청년이 차에 치여 의식불명 상태가 되는데, 청년의 소지품 중에 죽은 남성의 지갑이 있다는 이유로 경찰은 청년을 범인으로 의심한다. 사건을 담당하게 된 니혼바시 경찰서의 가가 형사는 사건이 보기와는 다를 수도 있다고 짐작하고 피해자와 용의자의 주변 탐문을 꼼꼼하게 진행한다. 그 결과 용의자가 해고 당한 전 직장의 상사가 피해자였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용의자가 범인일 수 있다는 설에 점점 더 무게가 실리는데...
앞에서 이 소설이 <백조와 박쥐>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썼는데, 첫째는 도쿄 한복판에서 중년 남성이 살해 당하는 장면으로 소설이 시작되는데, 살해 당한 남성은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 있지 않고 남은 힘을 짜내어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이는 살해 당한 사람이 자신을 살해한 사람을 고발하기 위해 쓰는 '다잉 메시지'와는 정반대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숨겨주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행동인데, 두 소설에서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을 숨겨주려고 하는 목적 내지는 이유도 비슷하다.
둘째는 사건이 알려지고 언론 보도가 과열되면서 가해자의 가족뿐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도 피해를 입는다는 점이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가족들이 스스로 사건 해결에 나서는 양상은 <백조와 박쥐>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기린의 날개>에서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기린의 날개>에서 피해자의 아들인 유토와 용의자의 아내인 가오리가 <백조와 박쥐>에서 용의자의 아들인 가즈마와 피해자의 딸인 미레이에 비해 활약을 못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유토는 아직 미성년자인 학생이고 가오리는 임신한 상태라서가 아닐까.
셋째는 모든 것이 아버지의 자식 사랑에서 비롯된 것으로 결론이 난다는 점인데, 이는 두 소설뿐 아니라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소설에서도 볼 수 있는 특징이라서 특별한 것 같지는 않다. <백조와 박쥐>에서 노인 대상 사기 문제를 거론한 것처럼 <기린의 날개>에서는 일자리 부족과 산업 재해 문제를 거론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기린의 날개>를 처음 읽었을 때는 기업들이 어떤 식으로 공장 내에서 일어나는 중대 재해를 은폐하는지 잘 몰랐는데, 그동안 몇몇 사건을 접하고 불매 운동에 참여하기도 하면서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진작에 이를 언급한 히가시노 게이고, 역시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