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못하는 일을 쉽게 해내는 사람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든다. 이를테면 처음 보는 사람과도 편안하게 대화하는 사람. 사람들 앞에서 잘 웃고 잘 울고 잘 화내고 잘 잊어버리는 사람. 눈 앞에 다수의 사람들이 있어도 긴장하지 않고 자기 표현을 잘 하는 사람. 관계가 어떻게 끝날지 걱정하지 않고 쉽게 뛰어드는 사람. 실패를 인정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걸 잘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보면 닮고 싶고 그의 장점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드는 한편으로 나는 왜 그런 사람이 아닌지 자책하는 마음,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절망하고 체념하는 마음이 든다.
2021년 김승옥문학상 대상을 받은 소설가 문진영이 2023년에 발표한 소설집 <최소한의 최선>에는 그런 사람, 그런 관계가 여러 번 등장한다. <미노리와 테츠>의 '나'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사랑받는 캐릭터인 친구 수민을 부러워한다. <변산에서>의 '나'는 학창시절부터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해 딸을 낳고 자신보다 훨씬 어른스럽게 살고 있는 친구 민주를 내심 우러러 본다. <오! 상그리아>의 '나'는 해외여행 자체가 드물었던 시대에 세계일주를 다니며 여행작가로 이름을 날린 엄마에 대한 복잡한 마음을 품고 있다. <내 할머니의 모든 것>의 '나'는 여자는 현모양처로 사는 게 제일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던 시대에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한 외할머니를 남몰래 동경한다.
나와 다른 누군가의 삶이 부러운 건 내 삶의 형태가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웬만해선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너무 늦지 않은 어떤 때>의 '나'가 인도 여행 중에 만난 안와를 보면서 느끼는 경외심이 그렇고, <고래 사냥>에서 함께 취업 준비생 시절을 겪고 있는 룸메씨와 월미도 바이킹을 타러 가는 '나'의 심정이 그렇다. 가족들과의 태국 여행에서 만난 아르바이트생 론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는 <네버랜드에서>의 '나', 퇴사 후 생산적인 나날을 보내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지나가는 바람>의 '나'도 그렇다.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되고 싶은 욕망 때문에 괴로운 이유는, 어쩌면 과거에 일어난 어떤 일 때문에 자기 자신과 불화하거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령 <한낮의 빛>의 '나'는 오랫동안 남들 앞에서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는 그가 철들기 전에 저지른 어떤 일과 관련이 있다. 그 일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존재였을 수도 있지만, 그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지금의 나로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최소한의' 나도 '최선'의 나라는 걸 받아들이는 겸허함을 가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