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을 그만둔 후 20년간 집에서 은둔형 외톨이로 지냈던 남성이 시체로 발견된다. 사건 현장을 봤을 때 자살일 거라고 짐작한 경찰은 남성의 옷장 안에서 뜻밖의 물건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옷장 안에는 스물다섯 개의 유리병이 있고 그 안에는 누군가의 시신 토막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20년 동안 바깥 출입을 전혀 하지 않은 남자가 언제 어디서 사람을 죽여서 어떻게 시체를 처리한 걸까. 강력반 형사 '쉬유이'는 엄청난 사건이 될 거라고 예상하고 조사에 착수한다.
<고독한 용의자>는 <기억나지 않음, 형사>, <13.67>, <망내인> 등 다수의 소설을 펴낸 홍콩 작가 찬호께이의 최신작이다. 처음에 나는 은둔형 외톨이가 살인 사건의 용의자라는 설정이 - 추리 소설 작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밀실 트릭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존재라는 점에서 - 너무나 매력적이라고 느꼈는데, 생각보다 이른 단계에서 소설 속 은둔형 외톨이가 20년 간 거주한 방이 실제로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 아니고, 인터넷을 통해 얼굴을 모르는 사람과도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아쉬움을 느꼈다. 그러다 소설 후반부에 나오는 반전을 보고 '역시 찬호께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반전인지는 직접 읽어보고 알아내시길...
찬호께이는 사회파 범죄소설가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 소설에도 그런 면모가 드러난다. 자살은 너무 흔한 일이라서 놀라는 사람도 별로 없다. 누군가가 고립되어 은둔하는 생활을 해도 관심을 가지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은 드물다. 남성들은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직접 대시하는 대신 돈으로 '렌탈 애인'을 사고, 여성들은 생활비, 학비를 벌기 위해 어릴 때부터 성매매에 뛰어든다. 경찰은 무능하거나 무력하고, 시민들은 경찰을 신뢰하지 않는다. 과연 이 도시에 '고독한 용의자'는 단 한 명뿐일까. 소설 속 장면들을 곱씹을수록, 쓸쓸한 결말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