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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의 책다락
  • 미들섹스 1
  • 제프리 유제니디스
  • 15,300원 (10%850)
  • 2025-02-07
  • : 1,096



사주나 MBTI 등이 오랫동안 유행하는 걸 보면, 사람들은 다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걸로 진정한 자기 자신을 알 수 있을까. 코끼리의 코만 들여다 봐서는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면 평소에 있던 자리에서 몇 발짝 더 떨어진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보는 편이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나를 낳거나 길러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거나, 아니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애에 대해 알아 본다거나.


미국 작가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대표작이자 2003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미들섹스>는 바로 이런 식의 구성을 따른다. 소설은 미국 국무부 직원인 40대 '남성' 칼이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칼은 안정된 직업과 매력적인 외모를 지녔지만 여태 결혼하지 않았고 오랫동안 연애 관계를 유지한 사람도 없다. 베를린에서 만난 여자와 잘 되어가는 분위기이지만, 칼은 그 여자가 자신에게 결혼을 원할까 봐 불안하다. 그도 그럴 것이 칼은 사실 열네 살 때까지 자신을 여성으로 알고 살았고, '유전에 의한 간성'이라는 의사의 판결을 받은 이후에야 남성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유전에 의한 간성'이라고 축약 되었지만, 사실 여기에는 칼의 조부모로부터 부모를 거쳐 칼에게 내려온 기나긴 역사가 있다. 그리스인 남매인 레프티와 데스데모나는 1922년 그리스와 튀르키예 사이에 일어난 분쟁 중 하나인 스미르나 대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선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남매는 자신들을 부부로 위장했고, 미국에 정착해 죽을 때까지 자신들이 사실 친남매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이들의 아들인 밀턴은 부모의 사촌인 수멜리아의 딸 테시와 결혼해 (후에 칼이 되는) 칼리오페를 낳았다. 이런 식으로 거듭된 근친혼이 간성을 낳은 것처럼 소설에는 그려져 있지만, 내 생각에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간성이 아니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이 간성에 관한 소설이라고 해서 읽었는데 기대와 다르게 간성에 대한 내용은 많지 않았다. 그보다 이민 1세대인 칼의 조부모가 어떻게 미국 사회에 자리를 잡았는지, 이민 2세대인 칼의 부모가 어떤 식으로 미국 사회의 중산층 진입에 성공했는지, 이민 3세대인 칼이 조부모, 부모로 물려 받은 경제적, 문화적 유산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회적,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지를 '간성'이라는 드물지만 존재하고, 존재하지만 무시되고 있는 육체로서 표현한 것이 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간성인 인간의 3대에 이르는 가족사를 통해 20세기 미국 이민자 가정의 문제를 보여주는 이러한 방식은 다섯 자매의 자살을 통해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병폐를 드러낸 작가의 전작 <버진 수어사이드>의 전개 방식과 유사하다. 


두 소설의 배경이 모두 미국 디트로이트인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작가 제프리 유제니디스가 실제로 디트로이트 출신인데, 디트로이트는 미국 미시간 주 최대 도시이며, 미국을 대표하는 3대 자동차 회사인 제너럴 모터스, 포드, 크라이슬러가 모두 이곳에 있어서 20세기 중반까지 엄청난 발전을 누렸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로 점점 쇠퇴해 인구도 크게 줄고 반대로 범죄, 폭동은 크게 늘었는데, 이 모든 내용이 이 소설에 담겨 있다. 현대 미국의 역사, 그중에서도 디트로이트의 역사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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