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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의 책다락
  • 나의 작은 무법자
  • 크리스 휘타커
  • 17,100원 (10%950)
  • 2025-02-19
  • : 14,616



삶이 축복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충분히 살아보지 않았거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반대로 삶이 축복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 또한 아직 충분히 살아보지 않았거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모순적인 두 개의 문장이 성립 가능한 건, 삶 자체가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방금 전까지 행복했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쓰러져 사경을 헤매게 될 수도 있고, 방금 전까지 사경을 헤매던 사람이 의식을 되찾고 행복을 음미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삶이다. 그러니 삶이란 끝까지 살아보기 전에는 모르고, 끝까지 살아본 후에도 모른다.


영국 작가 크리스 휘타커의 소설 <나의 작은 무법자>는 삶의 양면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독특한 분위기의 범죄소설이다. 설정 자체는 평이하다.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 케이프 헤이븐은 언뜻 보기에는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30년 전 끔찍한 살인 사건이 있었던 곳이다. 당시 10대 소년이었던 빈센트 킹이 여자친구의 여동생 시시 래들리를 살해한 것이다. 그 사건으로 인해 빈센트와 시시 주변 사람들의 삶은 망가지거나 심하게는 파괴되다시피 했다. 열세 살 소녀 더치스는 빈센트의 여자친구이자 시시의 언니였던 스타 래들리의 딸이다. 


사건 이후 30년이 흐른 지금, 빈센트가 30년의 형기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온다. 빈센트의 친구인 현직 경찰 워크는 빈센트와 스타, 스타의 딸 더치스와 아들 로빈 모두를 보호하고 싶다. 하지만 살인자인 빈센트와,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 둘을 낳고 술집에서 일하며 무절제한 삶을 사는 스타, 그리고 스타의 두 아이를 고운 눈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와중에 마을에서 또 다른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더치스와 로빈은 더 이상 마을에서 살 수 없게 된다. 워크는 빈센트와 더치스, 로빈을 구하기 위해 진실을 찾아 나서고, 더치스는 낯선 곳에서 동생 로빈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 중에 소위 말하는 '팔자가 편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다들 자기만의 지옥에서 구르며 인생의 쓴맛을 보고 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잠깐의 행복이 없지는 않다. 더치스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동생 로빈을 볼 때가 그렇고, 낯선 곳에서 새로 사귄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그렇다. 워크는 오래 전에 헤어졌던 연인과 재회하면서 자신의 삶에서 다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날들을 보낸다. 나는 불행해도 남의 행복을 위해 살다 보면 그것이 나의 행복이 되기도 한다는 것. 그것이 인생의 기묘한 점 아닐까.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이 그저 절망적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일을 경험한 더치스로서는 삶은 축복이라는 말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겠지만, 삶은 축복이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더치스 자신이 삶으로부터 받은 것도 많다. 워크 또한 오랫동안 자신의 삶은 망가졌고 돌이킬 수 없는 것들로 점철되어 있다고 믿었겠지만, 예상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 기대한 줄도 몰랐던 기쁨이 있는 것 또한 삶이었다. 그러니 더치스는 그 후에 백 퍼센트 행복한 삶을 살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 행복을 만들거나 느끼는 사람으로 살지 않았을까. 그렇게라도 나는 이 소설에서 희망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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