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읽은 조앤 디디온의 책 두 권- <푸른 밤>, <상실> -이 모두 저자의 개인적 서사(남편, 딸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 책도 그런 내용이 아닐까 짐작했는데 예상과 달랐다. 이 책은 조앤 디디온이 작가로 데뷔한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쓴 에세이 중 총 12편이 실려 있다. 내용은 개인적인 이야기도 있고 미국의 사회 문화에 관한 평론도 있다. 1968년에 발표한 '자기가 선택한 대학에서 선택받지 못하는 것에 관해'라는 글은 스탠퍼드 대학에 불합격한 경험을 담고 있는데(후에 UC 버클리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이 정도로 유명한 인사가 이 정도로 솔직한 글을 쓰다니. 나라면 쓸 수 있을까 싶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글은 낸시 레이건과 마사 스튜어트에 관한 글이다. 다들 알다시피 낸시 레이건은 보수 정당 출신 대통령의 부인이고 마사 스튜어트는 살림왕 이미지로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른 기업인이다. 진보적 지식인인 조앤 디디온이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진 낸시 레이건과 마사 스튜어트에 관한 글을 썼다는 것 자체도 신선한데 글의 내용도 상당히 놀라웠다. 특히 마사 스튜어트는 오랫동안 반(anti) 페미니즘 적인 인물로 평가 받다가, 2010년대 이후 SNS가 발달하고 인플루언서가 유행하면서 '원조 인플루언서', '셀프 브랜딩의 레전드'로 재평가 받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소설 쓰기에 관한 글도 인상적이었다. 보그(VOGUE) 지 기자로 커리어를 시작한 저자는 1963년에 첫 소설을 발표했다. 그 때까지 기자로서 객관적인 관점을 견지하며 글 쓰는 법을 훈련했던 저자는 소설을 쓰면서 전혀 다른 글쓰기의 경지를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거칠게 말해서 논픽션 글을 쓰는 '나'는 실제의 '나'를 벗어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픽션, 즉 허구의 글, 소설을 쓰는 '나'는 실제의 '나'와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걸 알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아는 걸 모르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실제의 '나'가 아닌 다른 자아로 글을 쓰는 경험은 글쓰는 사람에게 무한한 자유와 해방감을 준다고. 나도 체험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