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때에 비해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몇십 배는 빨라졌다고 느낀다. 예전 같으면 한두 달은 화제가 되었을 뉴스가 한 주, 짧게는 며칠이면 옛 이야기가 된다. 긴 동영상을 보는 게 힘들어서 몇배속으로 본다는 사람도 많다. 영화, 드라마 대신 숏츠에 중독된 사람도 허다하다. 책도 느리게 천천히 읽히는 것보다 빠르게 술술 읽히는 것이 선호된다. 나 또한 이른바 '페이지 터너'라고 불리는 책장이 빠르게 넘어가는 책이 끌릴 때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호흡보다 천천히 읽게 되고 한 문장 한 문장에 눈이 오래 머무는 책을 선호한다. 윤성희의 소설집 <느리게 가는 마음>이 그렇다.
이 책에는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평범하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학교에 가기 싫고, 직장에 나가는 어른은 직장에 가기 싫다. 식당 주인은 식당이 망하면 손님들은 어디서 밥을 먹을지 걱정이고, 식당 손님들은 식당이 망하면 사장은 어떻게 먹고 살지 걱정이다. 평범한 사람들이다 보니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 봤자 크게 특별하지 않다. 기껏해야 양말의 왼쪽 오른쪽을 바꿔 신거나, 평소에는 먹지 않았던 메뉴에 도전해 보는 정도. 호기롭게 가출을 감행하고는 예전에 살았던 집에 가보거나, 사람들이 묻어 놓고 잊어버린 타임캡슐을 찾아주는 정도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죽음까지 대수롭지 않은 건 아니다.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에는 모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데, 그래서 무겁고 어둡고 슬프고 절망적인 분위기인 건 아니고 오히려 가볍고 환하고 담담하고 어떻게 보면 희망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과 대칭을 이루듯, 생일에 관한 이야기도 빈번하게 나온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생일이란, 뭔가 대단한 일을 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태어난 날이니까 다른 날과는 다르게 보내고 싶은 날 아닌가. 딱 그 정도의 마음이 사람으로 하여금 오늘을 살게 하고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