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제가 '쓰기에서 죽기까지'인 줄 모르고 이 책을 샀다. 유진목 시인의 책이니까, 유진목 시인의 책을 좋아하니까 일단 구입부터 한 것이다. 사놓고 보니 126쪽. 분량도 적도 책 크기도 작아서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책장이 잘 안 넘어갔다. 물가에서 물을 향해 걷다가 물속에 들어가면 한 걸음 한 걸음이 점점 더 무겁고 둔해지듯이, 처음에는 가볍게 읽혔던 문장들이 갈수록 묵직하고 의미심장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책의 후반부에 드러나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쓰지 않겠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왜 책 제목을 <재능이란 뭘까?>라고 지었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저자 스스로 "정말로 죽지 않을 만큼만 돈을 주고 살려두면서 다른 선택도 못하게 하는 저주"(87쪽)라고 일컬은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가리키는가 싶었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제목의 '재능'은 예술적 재능만이 아니라 심리적 또는 정신적 재능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정확하게는 비관 대신 낙관을 택하는 재능, 불행보다 행복을 헤아리는 재능, 죽음에 이끌리지 않고 삶을 기꺼이 살아내는 재능. 어떻게 보면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재능보다 이런 재능이 개인의 삶의 질을 더 높이지 않나 싶다. 잘 먹고 잘 살아도 불행한 사람은 불행하고, 잘 못 먹고 못 살아도 행복한 사람은 행복하니.
어쩌면 사랑의 재능인가 싶기도 하다. 사랑을 발견하는 재능, 사랑을 시작하는 재능, 사랑을 지속하는 재능, 사랑을 끝내는 재능... 아 난 정말 이런 재능이 별로 없어서, 거리에서도 사랑을 발견하고 아무 걱정 없이 사랑을 시작하며 의심 한 점 없는 마음으로 사랑을 지속하고 미련 없이 사랑을 끝내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나는 왜 사랑을 잘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시작할 용기도 못 내고 지속하는 건 더욱 젬병이며 끝내는 건 또 왜 그리 어려워 하는지. 그러고 보면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재능이 큰 사람은 사랑도 잘하는 것 같고. 너무 부럽네. 나는 왜 이럴까.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