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현재 열 개 정도의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구독하고 있는 뉴스레터가 ㅎㅇ(서해인) 님이 매주 월요일에 발송하는 대중문화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이다. (구독하러 가기 https://contentslog.stibee.com/) 어떤 계기로 이 뉴스레터를 알게 되어 구독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매주 이 뉴스레터를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알게 되며 얻는 즐거움이 크다. 기업이 아닌 개인이,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콘텐츠 감상 이력을 아카이빙할 목적으로 뉴스레터를 제작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같은 콘텐츠 향유자(중독자?)로서 오랫동안 응원하고 싶다.
<콘텐츠 만드는 마음>은 <콘텐츠 로그> 제작자 ㅎㅇ 님이 본명 서해인으로 2022년에 출간한 에세이집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보는 사람'은 저자가 좋아하는 영화, 음악 페스티벌, 팟캐스트, 책, 케이팝, 호러물 등에 관한 에세이를 싣고 있다. 2부 '만드는 사람'은 '보는 사람'이었던 저자가 뉴스레터를 '만드는 사람'이 된 계기와 그 과정을 소개한다. 3부 '일하는 사람'은 프리랜서 창작자로 일하는 저자에게 영감과 자극을 준 책, 드라마 등의 리뷰를 담고 있다. <콘텐츠 로그>의 각 코너의 탄생 비화라든가 저자에게 영향을 준 콘텐츠 또는 콘텐츠 제작자 등을 보다 깊이 알 수 있어 <콘텐츠 로그> 구독자로서 재미있고 유익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콘텐츠 로그>야말로 콘텐츠 감상과 기록의 선순환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책, 영화, 드라마, 음악, 공연 등 분야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콘텐츠를 엄청나게 많이 지속적으로 소비해온 사람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데,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책을 제외하고) 감상한 콘텐츠에 관한 기록을 꾸준히 남기지 않은 나와 달리 저자는 자신이 감상한 콘텐츠를 꾸준히 기록하고 뉴스레터라는 공적인 형태로 발행까지 했다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콘텐츠를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감상한 콘텐츠를 기록하고 그 기록을 발행하다 보면, 아무래도 감상할 때 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정자세로 보게 되고, 본인의 취향이나 흥미에 치우친 감상을 덜하게 되어 궁극적으로 감상 경험의 폭을 넓히고 질을 높이는 효과를 얻게 된다.
실제로 몇 년 동안 <콘텐츠 로그>를 구독하면서, 처음에는 ㅎㅇ님이 일주일 동안 보고 듣는 콘텐츠의 양이 엄청나게 많은 점에 놀라고 관심 있는 분야나 장르가 다양한 점에 놀랐지만, 나중에는 하나의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선이 깊고 예리한 점에 놀랐다. 내 생각에는 오랫동안 많은 양의 콘텐츠를 보면서 일종의 자기만의 데이터 베이스 같은 게 생겨서, 새로운 콘텐츠를 볼 때 그 콘텐츠를 이해, 분석하는 데 필요한 정보나 지식을 떠올리고 활용하는 과정이 (콘텐츠 감상 경험이 적거나 데이터 베이스가 부족한 사람에 비해) 훨씬 신속하고 수월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토록 양질의 리뷰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기록을 표현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뉴스레터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 책에 따르면 뉴스레터 제작자는 제목을 정하거나 새로운 코너를 만드는 일에도 다양한 연구와 시도를 한다고 한다. 내가 매주 아무 생각 없이 열어보는 뉴스레터 한 회차를 만드는 데 이렇게 많은 수고가 들었다니. 앞으로 더 열심히, 세심히 읽어야겠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뉴스레터 시장 자체가 작아서 뉴스레터 운영이 수익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적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레터라는 공익적 활동을 통해 스스로 업을 만들고 지속하는 모습이 멋지다. 저자의 커리어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