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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소설의 오랜 팬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범죄 소설을 읽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범죄의 방법을 배우고 싶은 것도 아니고 범인을 알아내면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나는 대체 왜, 무엇을 위해 범죄 소설을 읽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범죄 소설을 손에서 놓았던 시기도 있었다. <존재의 모든 것을> 읽어보고 싶었던 건, 책 소개 글을 보고 작가 시오타 다케시가 나와 비슷한 의문을 품었던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상 초유의 아동 동시 유괴 사건이라는 소재 자체는 시오타 다케시의 전작 <죄의 목소리>와 비슷해 보였다. 그러나 "'공백의 3년' 동안 그 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라는 문장을 보고, 이 소설은 범죄의 과정을 따라가며 범인을 찾아내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닐 것 같았다. 그보다는 범죄로 인해 피해자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을 것 같았고, 어쩌면 이것(피해자의 삶에 대한 관심)이 기존의 범죄 소설들이 놓치고 있는 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 소설을 읽어보고 싶었다.
은퇴를 앞둔 신문기자 몬덴 지로는 30년 전인 1991년 일본 가나가와 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아동 유괴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나카자와의 부고를 받는다. 과거 나카자와가 자신에게 한 질문 - "결국 자네는 왜 신문기자를 하는 건가?" - 을 숙제처럼 여기고 살았던 몬덴은 나카자와가 죽기 전까지 해결하고 싶어 했던 사건을 다시 취재해보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몬덴은 최근 주목받는 화가 기사라기 슈가 유괴를 당했던 아이 중 한 명인 나이토 료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보통 유괴 사건이 발생하면 돈을 챙긴 범인이 아이를 돌려주지 않거나 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이하게도 나이토 료는 사건 발생 3년 후 집으로 무사히 돌아온 데다가 '공백의 3년'에 대해 일절 발설하지 않았다.
한편 아버지가 소유한 신주쿠의 한 화랑에서 일하는 쓰치야 리호는 화제의 화가 기사라기 슈의 그림을 보고 고등학교 동창 나이토 료의 화풍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고교 시절 료를 짝사랑했던 리호는 료가 30년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동 유괴 사건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로 인해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지 못한 것도 알았다. 오래지 않아 기사라기 슈가 나이토 료임을 폭로하는 뉴스가 주간지에 실리고, 료가 걱정된 리호는 오래 전 료가 보여준 그림 속 풍경들을 힌트로 그의 행적을 찾아나선다.
이 소설은 중심에 아동 유괴 사건의 피해자이자 현재 가장 주목 받는 화가인 나이토 료(기사라기 슈)가 있고, 그의 과거와 현재를 신문기자인 몬덴 지로와 화랑 운영자 겸 료의 고등학교 동창인 쓰치야 리호가 각각 다른 목적으로 다른 루트를 따라서 추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몬덴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부분은 <죄의 목소리>나 다른 범죄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데에만 집중하는 반면, 리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부분은 백화점과 미술계의 뒷면을 폭로하는 사회 소설 같기도 하고 청춘 남녀의 풋풋한 사랑을 그린 로맨스 소설 같기도 해서 전체적으로 다양한 재미가 있다.
나카자와로부터 "결국 자네는 왜 신문기자를 하는 건가?"라는 질문을 받았던 몬덴은 취재원으로부터 "자네는 지금 뭐가 알고 싶어서 취재를 하나?"라는 질문을 받고 또 다시 고민에 빠진다. 어차피 시효가 다해서 범인을 찾아도 처벌할 수 없고, 피해자는 무사히 돌아와 화가로 활동하며 잘 살고 있는데 대체 뭘 위해서 진실을 찾느냐는 물음에 좀처럼 답할 수 없었던 것이다. 료의 경우에는 '공백의 3년' 동안 대단한 드라마가 있었지만(소설이니 당연하다), 대단한 드라마가 없었다고 해도 열심히 찾은 보람이 없다고 느끼지는 않았을 것 같다. 진실을 추구하는 목적은 진실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경우 '공백의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가장 중요한 미스터리이고, 소설 초반에는 이 미스터리를 밝힐 사람이 피해자인 나이토 료 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면 의외로 여러 사람이 겹겹이 진실을 둘러싸고 있고, 최종적으로는 그 여러 사람이 피해자 한 사람을 위해 다양한 측면으로 보호와 지원과 관심과 애정을 지속적으로 제공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과 결말을 보면서 범죄 피해자에게 필요한 건 신속하고 정확한 수사로 범죄자를 찾아내서 처벌하는 것만이 아니라 피해자가 피해를 입은 환경에서 벗어나 다시는 피해를 입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범죄 소설을 읽지 않아도 할 수 있겠지만, 범죄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이런 사연이 가능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