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나의 소유가 적고, 남들이 보편적이라 부르는 소유물이 없는 나에게 독서는 특별한 선물이다. 부족한 나의 현재 모습 그대로를 수용하며 요동치던 내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선사한다. 너무나 힘들었던 상반기를 보내며 얼마나 책이 그리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좋은 것은 쉽게 오지 않기에, 일에 중독되어 있다가 독서삼매경에 빠지기 어렵다는 것을 짐작해 최근 소설을 먼저 집어 들었다. 높은 평점과 달리 클라이맥스가 없어서 그런지 잠 못 들게 하는 책은 아니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니면 자극적인 줄거리와 놀라운 반전에 길들여져 언제쯤 반전이 나올까 기대하며 읽었기에, 잔잔한 어촌의 이야기가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마음을 움직이는 극적인 전개는 없었고 시대적 배경이 예전인 데다 어업 관련 특정 영어가 생소하긴 했으나, 영어의 아름다움에 다시 젖어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적절한 언어로 구사한다는 것도 당연함이 아닌 감사의 조건이 되며, 같지만 다른 세련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재능이 아닐 수 없다. 예쁜 감정 표현, 한 문장 한 문장이 바로 내 마음을 보는 것 같아 책을 읽는 시간 자체가 힐링이었다.
바다에서 온 소년 Brendan이 특별한 존재일 거라 생각하며 계속 읽었다. 선한 어부 Ambrose의 입양으로 어촌 전체가 떠들썩했고, 성장 과정에서 보인 그의 특별한 행동은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어린아이임에도 마치 목사님이나 예수님처럼 어른들에게 손을 얹고 축복을 내리고, 어른들은 그 아이를 만나기를 기다린다. 나는 작가의 이 설정이 아주 특이하다고 생각했고 무엇을 위한 장치인지 굉장히 궁금했다. 처음부터 Brendan에게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 무엇이 어른들로 하여금 경외감과 존경심을 불러일으켰고, 그에게 축복을 받고 싶어 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를 미워하고 싫어했던 Declan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나이에 동생이 생겼다니 얼마나 불편했을까? 평범한 동생이 아니라, 부모님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의 특별한 사랑을 한 몸에 받으니 동생은 증오와 제거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하물며 Ambrose가 친아빠라고 소문내고 다니는 Brendan을 가문의 수치라 여기며 짐을 싸서 쫓아내고 말았다. 그러나 이모와 함께 그의 과거를 추적함으로써 부모일 가능성이 있는 한 남자를 만나고 와서는, 마침내 동생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Ambrose는 어떤 마음에 바다에 떠 있던 Brendan을 선뜻 입양했을까? 마치 성경 속 인물 모세를 이집트의 공주가 입양하여 아들로 맞이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Ambrose의 살림은 넉넉지 않았고, 아내 Christine도 남편의 의견에 동의하긴 했으나 평생을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보냈다. 시대적 배경으로 볼 때 혹시나 아들을 노동력 창출의 수단으로 여겨 경제적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Brendan의 아이 같지 않은 특이한 표정, 마을 사람들에게 끼친 선한 영향력이 더 이상의 진전 없이 평범하게 묘사되고, 그가 Declan과 정서적 원한을 풀고 그냥 대학 진학을 하는 것으로 끝난 것이 못내 아쉽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생각이 앞서감을 느낀다. 책 내용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생각을 더해 어떤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다른 책이나 매체에서 받은 영향일 수도 있고, 평범함을 홀대하는 내 습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평범하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Brendan의 과거 궤적은 끝내 드러나지 않았고 친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그는 이제 과거가 아닌 미래를 Declan과 논할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은 비로소 진정한 형제가 되었다.
사실 Declan은 늘 Brendan을 미워하며 동생이라 부르기를 거부했으나, 이상하게도 늘 Brendan을 찾아다녔다. 이렇게 미움과 사랑은 감정의 양극단에 있는 쌍둥이가 아닐까 한다. 서로 닮아서 싫고, 똑같아야 하는데 달라서 밉고, 궁극적으로는 같은 뿌리에서 나와 만날 수밖에 없고 공존해야 하는 불가분의 운명 공동체 같다고 할까? 나에게도 늘 소소하게 미운 사람이 있고, 현재도 존재한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있을까? 나도 이제는 그들을 미움이 아닌 사랑의 감정으로 온전히 마주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