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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0426님의 서재
  • The Faraway Nearby (Paperback)
  • 리베카 솔닛
  • 15,040원 (20%760)
  • 2022-07-07
  • : 165
이 책의 제목 ‘The Faraway Nearby’는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가 했던 말에서 차용했다고 생각한다. ‘멀지만 늘 가까이’라는 것은 언어의 역설이지만, 우리 삶에도 잘 적용이 된다. 짐작건대, 평생을 힘들게 했던 엄마와의 물리적·정신적 거리를 의미할 수도 있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직면해야 하는 죽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한다. 치매였던 엄마에게, 혹은 뇌종양에 걸렸던 작가에게도 죽음은 늘 가까이에 있었다. 그러나 실존 인물과 배경을 바탕으로 한 작가의 자서전적 이야기는 우리가 늘 공감(empathy), 동정(compassion), 이해(understanding), 용서(forgiveness)를 가까이에 두기를 원한다. 이 네 가지는 타인을 위한 확장의 개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의 감옥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됨을 작가 스스로 입증했다.

이 책을 오랜 기간 붙들고 있을 때는 얼마나 귀한 책인지 몰랐는데, 연휴 기간 몰입하여 읽으니 한 권의 철학책을 읽는 느낌이었다. 어둡고 차가운 깊은 우물에서 건진 정화수 같은 작가의 회고록은 은유적·수사적 표현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답고 깊음이 있어서 오랜 기간 나의 좌우명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비록 배움은 선택 사항이지만, 어려움은 배움의 학교이며 그 어려움을 독서로 극복한 작가가 존경스럽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음이 꼭 축복일 수 없듯이, 엄마에게 인정받지 못함도 반드시 불행은 아니었다. 책은 우리가 만나는 고독이지만 작가는 책에 몰입하고 언어 단식을 통해 세상과 높은 담을 세웠던 조용하고 말이 없는 아이였지만, 결국엔 엄마를 이해하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어른으로 성장했다.

늘 도덕적 질문과 원리에 집착하고 성취와 공헌으로 정당화시키려 했던 엄마의 삶은 치매를 통해 마침내 모든 원한, 비교, 기대감, 불안한 포부를 내려놓게 되었다. 자신과 닮지 않아서 기대감에 미치지 못해 구박하고 미워했던 딸에 대해 관대해졌다기보다 자신에게 너그러워진 것이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현재에 사는 삶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했는데, 치매라는 질병도 엄마에게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고, 모녀 관계를 회복시키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아울러 작가는 엄마를 비로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엄마를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용서의 시작이었고, 충분히 이해한다는 것은 일종의 용서이자 사랑이었다. 내가 너를 용서하니 너의 빚은 나의 관대함으로 탕감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오래되고 추한 낡은 고통을 내려놓고 미움과 증오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당당히 과거로부터 걸어 나옴이 진정한 용서이자 자유일 것이다.

작가의 삶을 그늘지게 했던 것은 단순히 엄마의 영향만은 아니었다. 뇌종양을 진단받고 그녀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나이 들어가는 엄마에게만 가까운 줄 알았던 죽음이 내게도 곧 엄습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인간의 욕망, 포부, 집착의 허무함을 알게 된다. 에라스무스의 ‘인간은 마치 거품과 같다’는 말을 통해 인간의 삶이 얼마나 유한하고 한시적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삶의 아이러니는, 그녀의 질병이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해 책 속에서 위안을 얻었던 그녀의 고독을 완화했다는 것이다.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어야 하는, 아무것도 영원한 것이 없는 이 세상에서는 고독도 사치였으리라. 만약 조만간 이 세상을 마감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에는 자신의 부정적 감정에 몰입하며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붙들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을 얼어붙게 하고 세상을 왜곡하는 것은 나르시시즘이거나 냉소주의자의 거울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나 역시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었다가 다치고 나면 금세 냉소주의로 변하게 된다. 허무주의에 머물렀다가 어느새 냉소주의자가 되어 마음을 닫고 세상을 향해 부정과 불만을 마구 쏟아내려고 한다.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 이야기에도 많은 장을 할애하고 있다. 그는 초기에 길 위에서 만난 개별적인 인간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했던 의사였으나, ‘더 나은 세상‘이라는 혁명적 대의를 위해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제거해도 좋다는 냉혹함으로 변하게 되었다. 혁명의 아이콘이 되면서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멀리 있는(Faraway) 억압받는 민중에게는 무한한 애정을 쏟았지만, 정작 자신과 가까이 있는(Nearby) 동료나 가족, 적대자들에게는 무자비하게 대우했기에, 아르헨티나와 쿠바에서 그에 대한 평이 엇갈리고 있는 것 같다.

작가는 책 외에 또 다른 건강한 출구를 통해 삶의 균형을 이룬 것 같다. 자신의 신조인 ‘타당한 이유 없이 모험을 거절하지 말라’에 따라 그랜드 캐니언으로 모험을 다녀왔다. 극한의 추위와 마주해야 하는 아이슬란드로의 여행도 매우 아름답다. 물론 책으로 그녀의 여정을 읽는 것보다 실제 겪어야 했던 그녀의 어려움은 어마어마했으리라. 그럼에도 모험 앞에서 ‘Yes’를 함으로써 그녀의 대답은 삶의 이정표가 되고, 또 다른 이정표를 세우는 계기가 된다. 많은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이기에 ‘부족한 것이 경험을 다채롭게 했다(What was absent colored experience. p.253)’는 표현이 나의 좌우명이 되길 바란다. 현재의 나 역시 부족한 것투성이이다. 남들에게는 있는데 나에게는 없는 것이 너무 많아 늘 이것이 열등의식과 피해의식이 되었다. 부족한 것을 자산으로 삼을 수 있고 삶의 양념으로 노래할 수 있는 그녀의 용기와 패기에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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