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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0426님의 서재
  • Resurrection (Paperback)
  • Tolstoy
  • 12,000원 (20%600)
  • 2009-08-27
  • : 119
결말을 알지 못한 채 마주한 고전은 뜻밖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칫 지루한 순애보로 읽힐 법한 제목 너머에는, 살점과 뼈가 튀는 치열한 사랑과 구원의 투쟁이 숨겨져 있었다.

마지막 510페이지를 읽으며 깜짝 놀랐다. 마치 클라이맥스를 지나는 것처럼 그 전 페이지부터 몰입해서 읽고 있는데 마지막 장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시베리아로 행군하면서 처음으로 이 책이 약간 지루한 감이 있었으나 엔딩이 너무 궁금했다. 유명한 고전이라도 제목으로 인해 흥미가 덜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고 나는 결말을 모르고 있었다. 현대에는 지루한 순애보라고 치부할 수 있으나, 제목 이면에 이렇게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신약에 푹 빠져서 치열한 자신의 고민에 답을 찾는 장면도 너무 감동적이었으나, 결국 완전히 새롭고 다른 의미를 찾게 된 그가 어떤 사랑을 하게 될지 궁금했다. 하지만 결국 나의 상상력에 도전을 주는 오픈 엔딩으로 끝이 나니 너무 허무하고 아쉬웠다. 사랑은 언제나 미완성인가? 진정한 사랑이기에 떠나보냄으로써 미완성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일까?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반자서전적 이야기이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책이라 엄청나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분량 면에 있어서 ‘전쟁과 평화’의 1/3, ‘안나 카레니나’의 2/3에 해당되는 적은 분량이지만, 두 권의 책과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쓰여진 책이며 왜 현대에도 명불허전이라 불리는지 잘 알 수 있다. 어쩌면 목숨 걸고 쓴 책과도 같고, 이 책으로 인해 파문까지 당했다고 들었다. 진정한 대문호 톨스토이의 용기, 대담성, 소명의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눈물겹고 감상적인 연애 소설의 옷을 입고 있는 이면에, 당시 그리스도 정교의 허상, 러시아 귀족들의 사치와 향락과 대조되는 농민들의 참담한 현실, 정부 고위 관직들의 부정부패, 비참한 러시아 감옥 체제의 현실이 담겨있다. 그 어떤 사회 혁명가나 개혁가보다 엄청나게 파괴력 있는 울림을 전하는 사회 비판 소설이 아닐 수 없다.

톨스토이의 사회악에 대한 진지하고 치열한 고뇌,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자성의 시간을 통해 회개하고 다른 삶을 살려는 치열한 노력이 묻어나는 점도 매우 인상적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악에 대하여 눈을 감는 것은 쉬울 수 있다. 아니라고 말을 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고 조롱과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또한 말이 아닌 실천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자신의 논리를 피력할 수가 없다.

톨스토이를 대변하는 네흘류도프(Nekhlyudov)는 귀족으로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으나 배심원 자격으로 법정에서 카튜샤 마슬로바(Katyusha Maslova)를 만나면서 그의 삶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마슬로바이지만 그녀가 지닌 순수한 아름다움에 반해 불꽃 같은 사랑을 한 후 기억 속에서 지운 지 10년이 되었으나, 배심원과 피고인으로 만나 서로의 삶을 변화시키게 된다. 그녀가 직업 여성으로 변하게 된 것이 전적으로 네흘류도프의 책임만은 아니지만 부인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그녀의 무고함을 입증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일단 일을 시작하면 전에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도와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주인공의 경우도 그런 것 같다. 무고한 마슬로바가 유죄를 받게 되어 변호사를 선임하게 되고 상소를 하기 시작하며 교도소를 드나들게 되다 보니, 무고하게 감옥에 들어가게 된 농민들, 정치범들이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게 되고 교도관들, 관리소장, 형법 체제의 비리를 알게 되어 분노하며 더욱 의욕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게 된다. 도중에서 그는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끌 것인지, 힘들어도 지치지 않고 나아갈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가 다른 귀족들처럼 향락과 사치를 즐길 때는 가족들과 지인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헨리 조지(Henry George)의 영향으로 토지 소유법에 대해 새로운 시선과 관점을 갖게 되고, 귀족들의 토지 소유를 반대하며 자신의 토지를 농민들에게 임대하려고 할 때 많은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결국 갈림길에서 편한 길을 택함으로써 남들처럼 살고자 결심하긴 했으나, 마슬로바를 피고인으로 만나게 되면서 그는 양심을 따르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녀의 최종 결말이 어떠하든, 어디에 있든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런 그에게 ‘당신은 당신의 양심을 구원하기 위해 나를 이용하는 것이다(You want to use me to save your soul. You disgust me.)˝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슬로바는 수면 아래에 묻어 두었고 잊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사랑과 아픔을 다시 상기시키게 된다. 한결같은 그의 태도와 행동으로 입증하는 그의 사랑, 두 명의 정치범 마리야(Marya), 시몬손(Simonson)의 영향으로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늘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된다.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 실감할 수 있다. 미모를 무기 삼지 않으며 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제일 좋아하는 취미가 자선이라 불리는 마리야, 과거의 죄를 보상하기 위해 자신을 선택하는 네흘류도프와 달리 현재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는 순수한 청년 시몬손이 그녀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과연 그녀는 누구를 선택하고 싶었을까? 네흘류도프의 노력으로 시베리아의 힘든 노동에서 사면(pardon) 소식을 들었으나 기뻐하지 않으며 시몬손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하겠노라고 선언한다. 이것이 그녀의 진심이었을까? 진심으로 네흘류도프를 사랑했기에 신분 자체가 다르고 살아온 방식이 다른 그를 구속할 수 없어서, 그를 떠남으로써 그에게 자유를 선물하고 싶었을까? 시몬손을 선택한 그녀가 다시 그로 인해 상처를 받고 다시 예전의 그녀로 돌아갈까 봐 불안하다. 물론 그녀가 어떤 남자를 선택하더라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항상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성과의 사랑은 항상 불완전한 것인가? 완전한 사랑이 존재하기는 할까?

연애 소설의 이면에 종교가 있다. 어쩌면 톨스토이의 진정한 목적은 기독교의 복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주인공의 치열한 고민인 악의 존재, ‘과연 범죄하는 인간이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벌할 수 있는가? 과연 내가 미친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미친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갈등의 답은 마지막 장에 있었다. 시베리아 장군의 초대에서 만난 영국인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시베리아 감옥 체제 조사 및 분석, 둘째는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알리고 신약을 죄수들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죄수들이 듣든 아니 듣든 간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해 죽으셨으며, 왼뺨을 맞거든 오른뺨을 돌려대고, 믿음이 있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가능해진다고 설교하는 그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사랑할 만한 이들만 사랑하고 쉽고 가능해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으나, 교도소에서 이런 복음을 전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결국 마지막 장에서 주인공은 마태복음 18장을 읽으며 그의 풀리지 않던 질문에 답을 찾는다. 날마다 죄인인 인간이 현재도 죄를 범하면서 악을 고치려 드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러시아 감옥 체제, 형법 제도, 귀족들의 허영과 이중성, 러시아 토지 제도의 모순과 불합리성을 고치려고 분개하고 동분서주했던 그는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느낌이었으리라. 베드로에게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형제를 용서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읽으며 그는 얼마나 가슴이 뜨거웠을까? 사소한 것이라도 인간의 의지로 용서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결국엔 인간의 힘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며 악을 척결하려고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될 수 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와 명예를 다 가졌던 톨스토이가 50세에 영적인 위기를 맞이했으나, 결국 신앙에서 답을 찾은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쓴 직후에 바로 언행일치의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나, 말년에 결국 그는 그리스도의 삶을 실천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안다.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의 의미, 선과 악에 대처하는 방법, 같음과 다름의 삶의 여정, 언행일치의 삶, 기독교인의 태도와 자세, 작가의 역할과 영향력 등에 대해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 이 책이 내게 너무 소중하고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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