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Above all else, guard your heart, for everything you do flows from it. (Proverbs 4:23)
사적 세계, 내적 정원, 영적인 세계의 질서를 잘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려주는 책이다. 제목이 주는 일시적 통찰력을 넘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평안해짐을 느꼈다. 어쩌면 현대인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물질이 아니라 내면의 질서와 평안일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근심이나 걱정도 잔잔한 일상을 얼마나 심하게 흔들 수 있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어쩌면 그간 내가 책에 매달린 것도 마음의 평정을 위함인지도 모른다. 나는 인문학 서적, 궁극적으로는 철학 서적에서 내 평정심을 찾을 수 있고 내 마음을 훈련시킬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으나 그것이 임시방편임을 알게 되었다. 책이 주는 위안은 세상 문제의 큰 무게를 감당할 만큼의 파급력은 없었다.
작가만큼이나 나 역시 driven, 혹은 driveness와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좋은 취지로 말하면 내적 강박증이 있어 추진력이 강하다고 할 수 있지만, 부정적인 면에서는 성공 지향성이 있으며 가시적 결과에 집착하여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단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오늘날 이 사회를 끌어가는 리더들의 성격도 이 단어와 맞물려 있다. 이 단어와 어울리는 성경 속 인물로 Saul을 예로 들고 있다. 외모마저 출중한 인물로 많은 것을 가졌으나, 다윗에게 강한 질투심과 경쟁심을 느끼며 자기의 마음을 지키지 못해 결국 파국을 맞이한 인물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장단점이 있듯이 driven의 성격을 지닌 인물이 자기 마음을 잘 지켰더라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Saul과 대비되는 인물로 죄인 중의 괴수가 자칭했던 Paul과 John the Baptizer가 있다.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나 엄청난 대중의 인기몰이를 하며 인기의 절정에 있던 세례 요한은 물러날 때를 알고 세상의 명예에 집착하지 않으며 ‘He must increase, but I must decrease: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22)라는 말로 예수님을 높인 인물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기에 세례 요한의 인품이 보석처럼 빛난다고 생각한다. 겸손히 나를 낮추며 누군가의 축복을 빌어주면서 마음의 평안을 놓치지 않는다면 이보다 훌륭한 그릇이 있을까 싶다. 나의 때를 알고 뒤로 물러설 줄 아는 현명함을 배우고 싶다.
베다니 마을의 두 자매 마리아(Mary)와 마르다(Martha)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예수님을 맞이한다. 언니인 마르다(Martha)는 예수님을 위해 음식 준비에 바빴던 driven 성격의 인물이고, Mary는 예수님 발치에서 말씀 듣기에 바빴다. 그런데 이 책에서 Just give Mary a little chance as well as Martha. (P. 83)라는 표현이 있었다. 주도적인 인물은 늘 앞장서서 일을 추진하기에 속도가 다소 느린 사람이나 뒤늦게 합류하는 사람들을 덜 배려할 수가 있다. 내가 예전에 Mary 같은 친구나 동료에게 기회를 주며 함께 가려고 했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driveness의 반대 개념으로 calledness가 있다. 즉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 뜻에 앞서, 내가 먼저 일을 생각하고 계획하며 추진하려 했음을 회개한다.
추진력과 주도성이 무조건 단점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추진력은 내적 공허함과 불가피하게 만나게 되어 있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어느 날 벽돌에 부딪치듯 큰 공백을 느끼며 감정적 대홍수(emotional deluge)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적 성장의 방법으로 listening, reading, purposeful study를 추천하고 있고 나는 이 방법에 격하게 공감한다. 잔인할 만큼 정직하게 들려오는 쓴소리와 비판의 소리까지 겸허하게 받을 때 성장할 수 있다. 작가는 연필로 감동적인 문구를 표시하거나 메모하면서 독서를 한다고 했다.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방어적 공부(defensive study)가 아니라, 순수한 배움의 즐거움을 향유하며 자발적인 동기에서 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참여하는 offensive study(공격적 공부)를 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신앙인으로서 영적 훈련을 위해 추천하는 5가지는 침묵과 고독, 찬양, 듣기, 묵상과 중보 기도이다. (silence and solitude, singing, listening to God, reflection and meditation, prayer as worship and intercession) 작가가 실천하는 journaling을 나도 했었는데, 현재는 못하고 있는 것이 너무 아쉽다. 글쓰기에 관심과 욕심이 많은 내가 오랜 기간 일지를 써 왔는데, 손으로 쓰는 것이 힘들어 아이패드로 실천하려다 지금은 못하고 있다. 특히나 일지를 통해 기도를 쓰고 싶었다. (writing prayers)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기도를 쓰는 내용이 나와서 한동안 실천하다가 지금은 멈추었는데, 다시 시작해 볼까 고민 중이다.
기도는 나의 나약함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인정함으로써 엄청난 해방감을 얻을 수 있고 내가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을 때가 아니라 내가 빈손일 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느낄 수가 있다고 했다. (God gives where He finds empty heart. P.148) 또한, 중보 기도는 기독교인이 가지는 특권이기에 마음껏 누리고 싶다. 작가는 중보 기도의 범위를 확장하여 세계 복음화를 위해 요일별로 기도 지역을 달리함에 감동 받았다. 정말 큰 그릇은 자신이 아니라 더 큰 것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다운 쉼(Sabbath)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내면의 질서를 세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됨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 작가가 청년의 때에 200개 이상의 성경 구절을 대문자, 쉼표, 마침표까지 정확하게 암송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암송했던 시편 구절이 74세가 되어 종양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절로 떠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성경 필사를 하는 기독교인이 많은 것을 안다. 나 역시 성서대학에서 2년 공부할 때 성경 구절 암송 시험이 있어서 출퇴근 길이나 주말에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암송했던 때가 있다. 이런 성경 구절이 자양분이 되어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저절로 연상이 된다. 그때는 조사까지 이렇게 암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도 생각했지만, 정확히 암기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쓰고 암기하기를 반복해야 하고, 반복하지 않으면 오래 남지 않기에 정확하게 암기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 것 같다.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에 가시적 결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생각보다 타인은 나에게 관심이 없을 수 있다. 내면의 성장과 질서 없이 나는 항상 외로움, 고독, 공허함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이 기간이 오래되면 결국 감정적 대홍수를 넘어 파국을 맞이할 수도 있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 자체를 무의미하게 느낄 수도 있고,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와 목적을 찾지 못해 가시적 결과를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작가의 추천 방식을 모두 실천하기는 어려우나, 조금씩 시도하며 내 마음의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