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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0426님의 서재
  • Man's Search for Meaning (Inte...
  • Viktor E. Frankl
  • 9,920원 (38%100)
  • 2019-04-23
  • : 3,036
책에 대한 애착이 강한 편이지만, 동시에 ‘항상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다.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일종의 편집증도 있어서,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두 번째로 읽게 되었고, 첫 번째와는 전혀 다른 감동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 글자 한 글자 정독하며 집중했고, 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보석 같은 문장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책이 주는 선물은 읽는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목적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의지심장한 힘을 품고 있는지 다시 실감했다.

‘의미’와 ‘목적’은 평생 나를 따라다닌 화두였다. 삶의 이유를 끊임없이 찾아 헤매며 마음속 깊은 곳에 실존적 공허를 안고 살아왔다. 허무감과의 싸움은 늘 치열했고, 나를 붙드는 질문은 단 하나였다. “왜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이토록 명료하고 따뜻하게 답해주는 책이 또 있을까. 이번 정독은 마치 내 삶의 실마리를 하나씩 풀어가는 여정 같았다.

작가 빅터 프랭클은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였고, 제2차 세계 대전 중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4개의 수용소를 전전하며 3년간 수감되었다. 그는 미국으로 이민할 기회가 있었지만, 집에 있던 테이블 탁자에 새겨진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을 보고는, 부모를 두고 혼자 떠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결국 그는 부모와 함께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고, 부모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자서전적 기록이기도 하지만, 수용소에서 겪은 인간 이하의 참혹한 삶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작가는 수용소에 끌려가기 전부터 의미 중심 치료인 로고테라피(Logotherapy)를 구상하고 있었고, 그 원고를 몰래 소지했으나 곧 빼앗겼다. 하지만 그는 수용소에서도 기억을 더듬어 원고를 재작성했고, 그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세상에 알리겠다는 목적이 그를 버티게 한 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

수용소 생활은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파괴적인 환경이었다. 극심한 굶주림, 무감각(apathy), 불면, 냉대, 죽음의 공포 속에서 수감자들은 원시적인 정신 상태로 퇴화해 갔다. 그런 상황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프랭클은 이에 단호하게 “Yes”라고 말한다.“Meaning is possible even in spite of suffering.”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고통 때문에 의미는 가능하다고 그는 거듭 강조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고통을 미화하지 않는다. 피할 수 있는 고통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삶은 불가피하게 고통을 수반하기에,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조언한다.

Priority: 가능하다면 상황을 창의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라.
Superiority: 그래도 안 된다면 의미를 부여하고 견디는 노하우(know-how)를 익히라.

그 힘의 원천은 바로 ‘의미’와 ‘목적’이다. 삶의 의미는 고통뿐 아니라 ‘일(work)’과 ‘사랑’ 속에도 숨어 있다고 그는 말한다.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삶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음미하며 살아야 전체의 맥을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삶의 궁극적 의미는 죽기 직전, 모든 장면을 돌아보는 순간에야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 의미가 내포되어 있더라도, 그 자리에서는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프랭클은 말한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기 전에, 삶이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고. 우리는 각자 대체 불가능한 소명을 안고 태어났고, 각자의 삶에 책임 있게 응답해야 한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태도와 행동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수용소에서도 누군가는 돼지(swine)가 되고, 누군가는 성인(saint)이 된다. 누군가는 종교 토론을 하거나 이탈리아 아리아를 부르며 박수를 받고, 누군가는 죽음만을 기다리며 체념할 수도 있다.

그런 자유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프랭클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 동해안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면, 서해안에는 책임의 동상을 세워야 한다.”
자유란 책임과 동의어임을 그는 분명히 했다. 프랭클에게 삶의 의미란 단지 자신의 쾌락과 안락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의미를 찾도록 돕는 것, 그 안에야 비로소 존재의 목적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수감 전에도 우울증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을 도왔고, 수감 후에는 로고테라피를 전 세계에 전파하여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그는 Freud처럼 과거의 상처에서 원인을 찾지도, Adler처럼 인간의 힘만으로 미래를 개척하자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실존 역학(existential dynamics)이 실존 공백(existential vacuum)를 채울 수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을 몸소 실천한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였다.

책을 덮은 지금, 그는 여전히 내게 묻고 있다. “너는 너에게 주어진 소명을 감당하고 있는가?” 삶이 나를 향해 기대를 걸고 있다는 생각은 때때로 큰 부담이 되지만, 동시에 나를 곧추세우는 힘이 되기도 한다. 나는 자아실현을 통해 남들처럼 행복하고 싶었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자아실현은 자기 초월의 부산물로서만 가능하다(Self-actualization is possible only as a side-effect of self-transcendence)고 했고,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산물로서 뒤따라 오는 것이라 했다. (Happiness cannot be pursed; it must ensues.) 결국, 내가 아닌 남을 먼저 생각할 때, 나의 존재가치를 세우며 나를 실현시킬 수가 있고 비로소 그 때서야 행복이 나를 따라온다는 것인데 그동안 잘못 살아온 것인가? 이 문장을 읽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것일까? 마지막으로 떠오른 문장은 프란츠 카프카의 말이다. “A book must be the axe for the frozen sea within us.” by Franz Kafka
Man’s Search for Meaning은 내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산산이 깨뜨린 도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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