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History)는 나의 아킬레스건이다. 자신의 무지나 실수를 인정하며 민낯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기에, 나도 핑계 거리를 찾아본다면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역사와 세계사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상황이나 환경을 탓하기에는 그동안 충분한 시간과 정보가 많았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왜 나는 그동안 한국사나 세계사에 대해 더 깊은 관심과 흥미를 가지지 않았을까 원망스럽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이, 역사를 알지 못함으로 다른 책을 읽어도 맥을 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적이 많으리라. 우연히 이 책을 구매하게 되었지만, 나의 방치되었던 역사에 대한 무지를 깨우는 데 촉매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이 책은 2008년에 발행되었으며, 역사서를 대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모든 배움을 포함하여 역사 탐구도 즐겁게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을 목적으로 쓴 책이다. 공부하듯이 접근하지 말라고 했기에 가볍게 읽었으나, 한 권의 책(284쪽) 안에 구석기 시대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방대한 내용을 모두 담고 있어 내 기억력의 한계로 리뷰를 쓰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책을 좋아해서 책에 대한 애착이 강하지만, 항상 내가 느끼는 것이 있는데, 독서에 대한 욕심이 지적 집착, 인지적 허영, 권태를 피하는 호기심, 외로움을 채우는 수단 등 그 어떤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책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수단으로 읽기에 가끔은 활자만 읽으며 ‘읽기 위해 읽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는 않았나 하는 부끄러움이 있다.
오랜 기간 읽었음에도 전체적인 맥을 잡거나 자연스러운 흐름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으나, 파편적으로 듣고 배운 기억을 상기시키며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다. Veni, Vidi, Vici (I came, I saw, I conquered)를 부르짖으며 승리의 쾌거를 외쳤던 로마 장군 Julius Caesar가 친구에게 배신당하면서 “You too, Brutus”를 말하며 생을 마감했다. Henry IV가 Pope Gregory VII와 충돌해 파문당하자 북이탈리아의 Canossa 성을 찾아가 3일 동안 눈 위에서 맨발로 교황에게 용서를 구했던 일로 인해 ‘go to Canossa’라는 표현이 자존심을 접고 비굴한 용서를 구한다는 뜻임을 알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종교와 정치의 결탁이나 결합이 옳은 것인지 혼란스럽다. 종교가 삶 속에 깊은 영향을 끼치기에 반드시 비세속적일 수는 없다. 그러나 종교 자체의 본연의 의미를 벗어나 정치적인 영향력에 깊이 관여하거나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
소설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역사도 인물 중심으로 읽은 것 같다. 농군의 딸로서 프랑스 군대를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했으나 19세의 나이에 ‘마녀 사냥’에 의해 화형에 처해졌던 Joan of Arc, 지적 호기심과 창의력으로 다재다능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인 Leonardo da Vinci, 로마 제국의 몰락과 더불어 시작된 중세 시대 가톨릭의 부패를 세상에 알리며 종교 개혁에 앞장섰던 독일인 Martin Luther와 프랑스인 John Calvin, 현대 과학의 대부라 불리며 과학적 사고를 도입하고 기독교적 세계관과 정면 대치하며 종교 재판에 넘겨져 가택 연금 속에서 생을 마감한 Galileo Galilei,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으나 프랑스 황제로 군림하며 만족할 줄 모르는 야망을 펼쳤으나 워털루(Waterloo)에서 패한 후 영국의 작은 섬 세인트헬레나(St. Helena)에서 외로운 생을 마감한 Napoleon,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간의 계층 갈등을 언급하며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The Communist Manifesto (1848)를 저술한 Karl Marx, 노예 제도 폐지의 쾌거를 이룬 Lincoln, 독일 통일에 기여한 외무장관 Bismarck,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고 1939년 폴란드 침공을 시발로 하여 세계 2차 대전을 일으킨 Adolf Hitler,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발발한 2차 세계대전의 원자폭탄 개발 기반을 마련한 덴마크인 물리학자 Niels Bohr 등등.
과학과 기술은 현재 문명의 이기를 도모하며 편리함을 가져왔으나, 못지않게 부정적인 영향도 끼쳤다. 그럼에도 이제 인간은 과학과 기술의 도움 없이 살아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다. 결국 열쇠는 다시 인간에게 있는 것인가? 세계 대전을 통해 인간(human)이 얼마나 비인도적(inhumane) 야수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과학과 기술의 파괴력과 영향력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잊혀져서도 안 되며 침묵해서도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기억하며,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며, 서로를 존중하고 관용을 베풀며 나아가는 방향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