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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0426님의 서재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단어 중의 하나이며 내가 가장 취약한 아킬레스건이 ‘waiting’이었다. 속도와 효율성을 큰 자산으로 하는 시대에 기다림이 낭비가 아닐 수 있다는 반전에 이 책을 선택했다. 고정관념을 깨는 정도의 신선함은 있어야 집중할 것 같았다. 나는 왜 그리 ’기다림‘을 싫어하는가? 이 단어는 개인적인 아픔과 관련이 있다. 오래 오래 기다렸는데 응답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혼에 대한 응답을 오래 오래 기다렸고, 언젠가 응답이 있느리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있었으나, 그 자신감이 교만과 오만이라는걸 알고, 결국 난 지쳤고 자포자기 하다가 무기력에 빠지곤 했다. 기다림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anger, anxiety, and apathy의 반응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내가 바로 그럴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왜 위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가? 상황이나 환경을 통제하고 제어할 능력이 없음에도 나 스스로가 바꾸어가지 못함에 대한 자신의 무능력에 화가 났던 것이었다. 결국, 궁극적인 통제권과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시간표, 나의 뜻과 계획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다른 그림을 그리고 계실 수도 있는데, 헤아리지 못하는 나의 소견은 늘 불안했던 것이었다.

기다림은 왠지 ’느림‘과 관련이 많은 것 같다. 인내심있게 잘 기다리려면 시간을 갖고 여유있게 불확실성을 견뎌야 한다. 그럼, 게으른 성격이 무던하게 잘 기다릴 수 있을듯하다. 실제로, 난 천성적으로 느린 나무늘보 같은 성격인데, 이것이 삶속에서 드러나 나의 치부가 될까봐 매우 이른 시간부터 활동하기 시작해서 지인들은 내가 아침형 인간이라 생각한다. 의도치않게 일중독으로 살아서 멀티태스킹이 일상이 되었고 말도 빨리 하다 보니 습관이 행동이 되어 나에게서 ‘느림’이란 단어가 빠지게 되었다.

결국, 나는 느림을 늘 동경하면서 추구하지 못했고, 무능력과 동의어로 치부하며 경시하며 살았다. 빠름이 자산이 되고 힘과 능력이 되는 시대를 살아가다 보니, 기다림을 통해 나타나는 느림을 견디지 못했다.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기제에서 생기는 ‘quiet quitting’은 기다림과 희망이 포기된 상태를 말한다. 최소한의 일을 하고, 포기는 했지만 여전히 일은 하는데, 동기부여되지 않은 무기력한 상태이다.

기다림이 낭비가 아님을 인정하며 느림까지 수용하고 인정하려면 기다림은 어렵고, 보편적이며, 성경적이고, 느리며, 명령이고, 관계지향적임을(hard, common, biblical, slow, commanded, relational)기억해야 한다. 아브라함, 요셉, 모세, 한나, 예수님 등등 모두 오랜 기다림의 여정을 통과했다. 이 시간 많은 사람들과 교회가 각자의 다른 기도 제목을 놓고 긴 기다림의 여정을 통과하고 있으리라. 희망을 안고 기다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기다림에 대한 FAST(Focus, Adore, Seek, Trust)의 처방이 마음에 든다. 삶에 우선순위, 방향을 먼저 설정하고 집중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늘 주를 사모하고 예배하며, 간구하면서 끝까지 믿으며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상황과 환경을 통제하려는 의지와 고집을 내려 놓고 전적 의존과 확신에 찬 기대감(absolute dependence and confident expectation)을 갖고 기다릴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이든, 과정은 낭비가 아니며, 영적 성숙과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보여주는 척도임을 기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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