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work)은 그동안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작년 연말에 일로 인해 엄청난 좌절감과 상실감을 느꼈다. 그 잔향이 오래 남아 큰 내적 갈등을 겪으며 다시는 어리석게 살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감정이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기대감을 낮추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최대한 자제하리라 생각했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잘 저울질하고, 내가 어떤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리라는 오만을 내려 놓으리라 결론을 내렸다. 위의 결론은 거의 분노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과연 왜 화가 잔뜩 나 있었을까? 나는 분명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한 것이고, 과거의 나와 비교하여 그 이상을 해야 만족을 얻는다. 열심히 하는 것이 기본값이고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부인하고 싶지만 인정의 욕구가 바닥 깊숙이 깔려 있었나 보다. 남들보다 그 이상을 노력했는데 덜 사랑받고 덜 인정받음에 큰 서운함이 있었나보다. 내가 가장 유치하게 생각하는 감정이 ‘서운함’인데, 내가 바로 서운함을 크게 느끼는 부족한 어린 아이였다.
서운한 감정으로 부끄러울 때마다, 신영복 교수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이 생각이 난다. 아주 오래 전에 읽어서 책 제목은 틀릴 수 있으나, 신영복 교수님이 저자인 것은 확실하다. 남들은 짜장면을 줄 생각도 안했는데 미리 먹을 줄 알고 기대했다가 머쓱해지고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쓰셨던 것 같다. 나의 기대감으로 서운함이 클 때, 난 항상 그 짜장면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내가 원해서 자발적으로 일했으나, 인정받지 못하고 더 사랑받지 못해 상처가 컸다.
그런데, 나는 이 책으로 인해 일의 방향성을 찾고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게 되었다. 일단 일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해야 한다. 나의 일터가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아 실현의 장으로서 나의 유익을 위한 곳이 아님을 기억하고 일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하자.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일(work)을 하시고 7일째 쉬셨다는 부분이 있다. 태초에 하나님도 일을 하셨고, 현재도 이 세상을 운행하시며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에게 이 땅에서 생육하여 번성하라고 하셨다. 구약의 하나님은 정원사(gardener)로, 신약의 예수님은 목수(carpenter)로 일하셨다.
인간은 일을 하도록 지어졌고 일에 의해 자유함을 얻는다. 보통 일은 구속이라 생각하지만, 물고기가 완전한 자유함을 얻기위해 땅으로 올라오면 안되고 물 속에서만 살아야 하듯이, 자유가 구속의 부재가 아닌 것이다. 일로 인해 자유함을 얻고, 의미 있는 일을 통해 내적 공허감과 상실감을 채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열심히 하면서 이것이 내게 적합한 일인지 항상 고민했고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마치 내가 교회, 전도, 봉사관련된 일을 더 해야 그것이 유의미하고,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내가 현재 일하는 장소에 나의 힘으로 우연히 온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려 부르셨다고 했다. 그 소명(calling)은 나의 유익이나 자아 실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함이라고 했다. (God’s assignment to serve others) 이 책에 제일 많이 반복되는 단어가 serve였다. 사실 내가 이런 의미를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서운한 감정에 분노를 덜 느꼈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 책은 그 섬김을 기쁘게 열정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 정도 열심히 하면 당연히 대접받아야(deserve) 한다는 교만함(pride)이 좌절되어, 냉소주의(cynicism)에 빠지는걸 넘어, 무관심(detachment)을 방어 기제로 삼으려 했던 내가 어떻게 해야 기쁨으로 일할 수 있을까? 확신과 만족감을 안고 나의 분야에서 탁월함을 발휘하려는 지속 가능한 동기 부여는 어디에서 얻을까? 이 땅에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낮고 낮은 섬김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실존적 좌절(existential frustration)을 넘어 실존적 의존(existential dependence)을 하라고 조언한다.
내가 바라고 구할 것은 세상의 인정이 아니었다. 일은 천하고 귀한 것이 없고 누구나 당연히 해야지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자신의 유익만이 아니라 섬김을 통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함이 궁극적인 목적인데 왜 인정을 통해 나의 가치를 드러내고자 하는가? 일은 기도이고(Your work is your prayer.), 현재 일을 하도록 준비시켜 부르신 하나님을 숭배하는 궁극적인 행위라고 했다. 내가 특별히 조심할 것은 overwork이다. 물론 overwork와 underwork 둘 다를 조심하라고 하고 있으나, 열정을 다해 일을 하되 쉼도 중요함을 언급하고 있다.
나는 평생을 일중독으로 살았으나, 나의 대의 명분(a just cause)이 잘못 설정되어 있었고, 소명 의식이 없어서 열심히 하는 것이 기본값이었으나 만족과 기쁨이 적었다. 지인들은 항상 일을 줄이라고 당부하였기에, 열심히 하는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이제는, 현재 나의 자리로 부르신 것을 확신하고, 부담이 아닌 특권( feel not a burden, but a privilege)으로 기쁘게 섬기고 싶다. 나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항상 조심하고, 열심히 하되 일중독이 되지 않으려면 기도와 독서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려 노력해야 한다. 나의 audience는 오직 한 분인 것을 기억하며 책임감과 기쁨으로 일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