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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0426님의 서재
  • Human Acts (Paperback)
  • Han Kang
  • 10,000원 (42%100)
  • 2017-10-17
  • : 28,376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의 악함과 폭력성에 대해 생각했다. 어릴 때는 ‘성선설’을 믿었고, 인간은 ‘선’을 지향하려는 의지가 보편적으로 내재되어 있으나, 환경과 상황에 따라 폭력성이 분출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인간은 원래 호전적이며, 악이 내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하고 내향적인 여자 아이들에게 장난감 총만 쥐어주어도 눈빛까지 변하며 갑자기 호전적인 자세로 돌변하는걸 보며 놀란적이 있다.

나 역시 겉으로 보이는 나의 성격과 달리, 악한 생각을 품을 때가 있다. 미움과 짜증을 넘어, 나도 예상치 못하던 돌발 행동을 하거나, 증오의 생각을 품을 때가 있어서 나도 나 자신에게 놀란적이 있었다. 다만, 내가 그걸 실천으로 옮기지 않았을 뿐이다. 한편으로는, 마음속에만 억압되어 있어서 큰 불편함을 느끼다가, 결국 그것이 원치 않아도 언어적 표현이나 얼굴 표정으로 드러났을 수도 있다. 나도 소소한 언어적 폭력이나 표정 폭력을 많이 자행했던 것이 사실임을 인정해야 한다.

또다른 내 안의 죄책감은 지역 감정이다. 나는 충청도가 고향이라서 특색이 없는 ‘멍청도’사람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차별을 받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전라도‘ 사람에 대한 편견 아닌 편견을 어른들로부터 듣고 자랐다. 그래서, 이 지역 감정이 나도 모르게 살짝 지배했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난 조정래 작가의 책을 너무 좋아하고 ’태백산맥‘을 감동적으로 읽은 사람인데도 전라도 지역에 관한 잘못된 편견을 아주 살짝이라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더 무서운 것은, 내가 이 책을 읽는 2025년도 현 시점의 정치 상황때문이다. 채식주의자는 아주 예전에 읽었는데 이 책은 알기는 했으나, 못 읽고 있다가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로 읽어야겠다고 다짐했으나 바빠서 오늘 끝냈는데, 현 시점의 정치 상황과 맞물리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2024년도는 한국 역사 이래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배출되었다. 그 책 내용이 독재 군부 아래 희생된 무고한 시민과 학생들의 영혼에 관한 슬픔을 담고 있다. 같은 연도 12월에 비상 계엄령이 내려져 나라 전체가 정치적 혼란에 빠졌다는 점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인해 특히,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둘다 역사적 이슈가 담긴 내용이라 전 세계적으로 더 많이 주목을 받고 온 나라가 이 책으로 인해 떠들썩했다면 오히려 정치인들은 자숙하며 민주주의 정착과 성숙을 위해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하지 않았을까? 나의 삶이 그러하듯, 인간의 삶 자체가 모순이고 역설인가? 더 슬픈건, 한 때 광주 민주화 운동이 ‘광주 사태’로 불리어졌고 진상 규명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진실을 만나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 우리는 늘 민낯을 만날 용기가 부족하여 온 몸으로 진실을 거부하고 있는가?

시인이 되고 싶었던 15세의 동호, 20대 초반의 진수, 은숙, 정미, 선주 등등의 학생들이 군부 독재의 총뿌리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총을 들고 있더라도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 죽이는 방법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저 죽음을 각오하고 맞선 것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양심‘때문이라고 했다. Conscience, the most terrifying thing in the world. p. 115) 그 양심이 마음 속 공포를 없애 주었고, 함께 연대할 용기를 주었다고 했다. 광주 학생과 시민들의 죽음, 상처, 아픔이 10일로 끝나지 않고, 평생을 괴롭혔다는 것이 더 마음이 아프다.

독재 정권 정당화를 위해 꽃다운 학생들을 폭도로 몰아 죽인 것도 모자라서, 출판물 검열, 노동 조합 참여 금지, 사복 경찰의 미행 등으로 인해 일상이 불가능했고 평생을 불면증에 시달리며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것을 읽으며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새롭게 깨달았다. 현재 누리는 생각, 표현, 행동의 자유가 누군가의 아픔과 희생으로 얻은 것이라 생각하니 죄책감도 들었다. 이 책 한권으로 그들의 아픔이 희석되기도, 위로 받기도 어렵다는걸 안다. 그럼에도, 한강의 이 책이,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쾌거로 인해 더 많은 긍정적 영향을 끼치기를 소망한다.

책은 원서로 읽는 것이 가장 이상적임을 깨닫는다. 이 책은 원서가 한글인데, 영어 버전으로 읽어서 감동이 약했던 것 같다. 노벨 문학상 수상에 영어 번역이 큰 역할을 한걸 알지만 한강의 수려한 필치를 영어로 다 옮기지 못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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