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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은 마치 우상을 찍어내는 공장같다’(Human heart is an idol factory.)고 했다. 사실 난 내 안에 나만의 많은 우상이 살고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심지어, 난 예전 부흥회에서 반복되던 ’자기 의‘라는 단어에도 강한 반발심을 느꼈다. 이제야 비로소, 내가 얼마나 교만했었는지, 내 안에 얼마나 커다란 우상 덩어리가 나를 지배해 왔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히스기야 왕이 우상과 산당 철거를 위해 개혁 운동을 벌였듯이 나 또한 새로 태어나고 싶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우상이 있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그가 평생을 두고 원했던 아들을 25년을 기다려 마침내 100세에 얻었는데 그 아들을 포기하라고 하신다. 오랜 기다림과 지연의 시간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을 다듬어 오신 그 하나님께서 다시 그 아들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이 될까하여 포기하라고 하신다. 이 책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이 얼마나 큰지 새삼 알게 되었다. 아브라함이 어떤 마음으로 모리아 산을 올라갔는지 표현되어 있지 않으나 하인들에게 이삭과 함께 다시 돌아올 것이라 말했다. (We will come back to you. - Genesis 22:5) 그는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우상을 해결해 주신 것이다.

고대 근동에서는 사랑(love)을 위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신분(status)을 위해 결혼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전하고 있으나, 야곱은 유례없는 사랑꾼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던 그는 어머니집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Rachel의 사랑을 위해 20년의 시간을 보낸다. 언니 Leah는 또 얼마나 슬픈 운명인가? 평생 야곱의 사랑을 갈구하며 보내지 않았던가? 사랑받지 못한다는 상실감에 빠진 Leah를 돌보시고 그녀의 간구를 들으신 하나님의 큰 사랑을 보라. Leah의 넷째 아들 Judah의 계보로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는가?

자녀, 사랑뿐 아니라 돈과 탐욕도 현대인의 큰 우상 중의 하나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재물의 노예가 되어 있는가?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는 동족 이스라엘인의 세금을 걷어 이방인인 로마에게 바치는 일을 했기에 죄인 취급을 당함으로 그는 권력과 재물은 있으나 영적 파산 상태였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 재산의 절반을 이웃에게 주고, 속여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한다. 삭개오의 정체성과 안전의 뿌리가 그의 우상이었던 재물에서 예수님으로 옮겨지는 순간이다.

권력이란 것 또한 타작마당의 겨처럼 얼마나 가볍고 약한 것인가?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란 말도 권력의 유한성을 나타낸다. 아람의 군대 장관 Naaman이 나병에 걸렸을 때 이스라엘의 선지자 Elisha를 소개한 사람은 이스라엘에서 붙잡혀 와서 여종 노릇하던 소녀이다. 결국 그는 엘리사를 찾아가나 밖에 나와 보지도 않고 사환을 통해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전갈에 분노한다. 기세등등한 권력을 지닌 그가 그런 대접을 받게 되었던 것에 참을 수 없었으나 결국엔 요단강에 몸을 담그자 어린아이같은 피부를 얻는다.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우상의 예시로 요나(Jonah)이야기가 있다. 북이스라엘 선지자로서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투철했던 요나는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외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다. 심지어 그로 인해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한 후 하나님이 재앙을 철회하시자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불평을 하고 차라리 죽기를 기다린다. 수고도 재배도 아니한 박넝쿨을 너가 아꼈거늘, 니느웨 120,000명의 사람과 가축을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나에게도 요나와 같은 모습이 얼마나 많은가? 나와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이 혹시 ‘악한 다른 사람’, 혹은 ‘나를 괴롭힌 악한 다른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자비가 머물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나의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게 하기 위해(Let God be God) 우상을 잘 분별하고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혼자 있는 고독한 시간에 무엇을 하는가, 둘째, 소비 패턴(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느니라), 셋째, 응답없는 기도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로 자신의 우상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우상을 찾아 분별하게 되어도 제거하기까지는 오랜 영적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고 집착하며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기다려 왔던 ‘나의 이삭(Isaac)’은 Jacob이나 Leah처럼 사랑이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것을 엉뚱한 곳에서 찾으며 평생을 기다린 듯하다. 그 사랑이 나의 우상이었음을 깨달은지도 얼마되지 않는다. 내려 놓았다 생각했는데도 며칠 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며 아직 자유함을 얻지 못한 나를 발견했다. 평안을 얻는 그 날까지, 자유함을 얻는 그 날까지 기도하고 기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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