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문외한이지만 정치에 관심이 많다. ‘정치에 무관심하면 자기 인생에 무책임한 것이다’라는 문구를 조정래의 책에서 읽으며 수치심이 찾아 들었다. 그러나 작년에 엄청난 상심과 낙담을 겪은 후, 무기력감에 빠지며 관심을 돌리고 싶었다. 그런데, 다시 내가 미국 정치의 양극화 현상에 대해 읽게 되었다.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 적잖이 실망했으나 놀랍지 않다.
미국도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나라이고, 그는 다시 재선에 도전하는 것 같다. 민주당 클린턴도, 각 언론사도, 심지어 공화당도 예상을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는가를 모티브로 하여 미국 정치 역사를 돌아보며 양극화된 이유와 과정 그리고 햐결책을 제시하며 예상을 깨고 희망적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과거 역사보다 발전된 민주주의 형태를 언급하며 내일은 더 좋아질거라 끝을 맺음에 놀라기도 했다.
정치는 자기 정체성과 집단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집단의 위치와 결론을 방어하려는 본능과 정체성 보호 인지 기능을 발동시키며 사실적인 정보를 거부하기도 한다. 즉, 자신이 원하는 답만 찾으려고 스스로를 속이며 지적 심연에 빠지기도 한다. 정치라는 중독성 마약 앞에서 인간이 소유한 합리적이고 논리적 ‘이성’이란 이름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가? 우리는 자신의 이성을 신뢰할 수가 없다. 인간의 정체성이 가장 위협받을 때 인간의 이성이 가장 취약하다고 하지만 너무나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혼자서는 이성적일 수가 없고, 이성이란 본질적으로 집단의 이익에 기여하기 위해 집단 프로젝트라고 했다.
현재 미국 민주당(흑인, 라틴계, 아시아계 등)은 진보적이고 공화당(주로 백인)은 보수적이다라는 양극화 체제로 굳혀졌다. Obamacare에 대해 단 한 명의 공화당표(상원, 하원 모두)도 얻지 못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1965년도에는 많은 공화당원들도 의료체제에 열린 마음이었더. 심지어 링컨은 최초 공화당 대통령이었다. 1964년 시민권법 제정 즈음으로 양극화가 조짐을 보인듯하다. 미국이 위기의 시기에는 오히려 정치체제가 평온하고 덜 양극화되었다는 것도 아이러니이다.
공화당은 백악관, 상원, 대법원을 장악하고 있고, 민주당은 하원뿐이며, 이는 인기가 아닌 지리적인 요인의 결과이다. 예를 들어 공화당은 펜실베니아 상원을 40년간, 오하이오 상원을 35년간 장악하고 있다. 언론과 정치는 또 얼마나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가? 민주당 의원들은 특정한 한 언론으로부터 정보를 취하지 않으며 다양하게 정보를 수집하는 반면, 공화당 의원들은 Fox News가 47%(보수 언론)이었다. 양극화된 정치체제가 언론의 양극화를 부추긴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큰 목소리와 내용으로 미디어를 장악하여 득을 본 사람이 트럼프이다(media coverage 47%). 심지어 트위터에 철자가 틀렸다는 등의 기사로도 주목을 받으며, 다른 후보들의 모든 정책을 묻히게 만들었다.
미국 인구수를 볼 때 인구 다양화로 백인 인구수가 줄어들면서, 과거에는 백인들이 당연하게 누리던 특권이었으나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 기회를 트럼프가 교묘하게 이용했다. 백인 고졸자들이 느꼈던 위기의식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특권에 익숙해지면 평등이란 단어도 압박처럼 느껴진다는 문장이 슬프게 들린다. (When you are accustomed to privilege, equality feels like oppression.) 라틴계나 아시아인들의 인구수가 많아짐에 설자리가 좁아지게 된 백인들이 트럼프의 포플리즘 공약들을 지지했을 것이다.
양극화의 해결책이라기보다 수정 방안으로, 채무한계(debt ceiling) 폐지, 비례대표제(
proportional representation system) 실시로 양당체제가 아닌 제 3당 만들기, 필리버스터(filibuster) 폐지 등으로 경쟁이 있는 건강한 정치 체제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국민들이 항상 의식이 깨어 있어야함을 강조한다. 우리의 정체성이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가지임을 기억해야 한다. 즉 대통령 선거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지방 선거에 더 열정을 쏟음으로서 적극적으로 내가 사는 지역을 바꾸어 갈 수 있다고 했다. (national < state or local)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나 역시 대통령 선거에는 관심이 높은데, 도, 시, 구역장 선거에는 덜 열정을 쏟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에 나이키 회사 경영진이었던 사람이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상처가 너무 커서 정치와의 단절을 선언한 사례가 나온다. 시골에 가서 살면서 마트도 사람이 적을 때 가고, 심지어 친적집 방문시에도 가족들이 민감한 정치 얘기를 하지 않도록 서로 조심시켰다고 했다. 그가 트럼프를 얼마나 혐오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좋아서가 아니라 클린턴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트럼프에게 투표했다고 했다. 기득권은 가진 것을 절대 빼았기면 안되고, 내가 가진 것이 위협받으면 이성적 사고가 마비된다. 내 상식으로는 트럼프 같은 대통령이 선출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으나, 정치는 내 소견을 월등히 넘어선다.
미국 정치 체제를 잘 몰라서 어려운 것도 있었고, 너무 오래 읽어서 전체 흐름을 잊은 것도 있어서 리뷰 쓰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럼에도, 읽은 것으로 끝내면 읽지 않은 것이 된다는 나만의 원칙으로 무리하게 리뷰를 쓰다보니 중언부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마치 한국의 정치를 보는 듯했다. 미국처럼 Blue vs. Red로 나누어진 한국 정치의 위상은 어디 즈음에 있을까? 작가가 보는 바와 같이 여전히 한국 정치에도 희망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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