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독서 모임 때문에 이 책을 구매했고, 인지도가 높고 수상작인걸 알지만 책에 대한 스포일러 없이 백지 상태로 읽고 싶었다. 전반부에서는 31살 캐시가 헤일셤에서 보냈던 시절의 내용이 계속 되어 다소 지루한 감이 있었다. 어린 시절 그녀가 만난 친구들, 선생님들, 학교 생활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리 만큼 섬세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녀가 보낸 학교 생활은 나의 동심과, 현재를 살아가는 학생들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림을 창의적으로 잘 그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림을 통해 그들 내면 즉 영혼이 있음을 증명해야 했고, 그들의 삶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림을 가지러 오는 마담이 그들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라는걸 보며 그들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한다.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기 위해 악전 고투하는 루시는 ‘나의 근원자’를 찾기위해 친구들(5명)과 함께 노퍽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들의 우정과 사랑과 특별하지 않다. 최선을 다해 친절과 이해로 무장하고 그림을 보아주는 제럴딘 선생님에 대한 애정, 적어도 한 사람(루시 선생님)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로 위안을 받는 토미, 커플이 되면 당사자들은 외부에서 보는 것만큼 상대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는 것 같다는 조언을 루스에게 하는 캐시, 가장 친한 친구의 허물을 덮어주지 못하고 당황하게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계획한 자신을 자책하는 캐시 등. 평범하고 잔잔한 그들의 일상은 우리 삶과 꼭 닮았다.
그러나, 그들은 의학 재료를 공급하기 위한 존재, 즉 장기 기증을 위해 태어난 클론들이다. 그걸 알고 나서부터 내 마음 속에 그늘이 찾아 들었다. 윤리적 딜레마에 갇혀 있는 복제 문제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모습으로 그려도 되는 것인가? 지나친 감정이입은 이성을 마비시켜 판단을 흐리게도 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런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로봇도 우리 일상을 파고들어 삶의 편이를 도모하고 있는 시대에 사유하는 로봇이 나온다는 이야기도 오래 전에 등장하지 않았는가? 나는 로봇과 공존 및 공생하는 시대가 올거라 생각했는데 클론의 생명의 존엄성도 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가?
인간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의 유한함 때문이리라. 복제를 통해 기술 문명의 우월성을 과시하며 바벨탑을 쌓으려는 인간의 교만함이 오히려 디스토피아를 부르지 않을까? 한편으로 인간과 클론의 차이는 무엇일까? 죽음을 맞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클론은 시기가 조금 빠르며 수단으로 이용됨을 알고 있다는 것뿐. 인간인 우리도 죽음의 때가 반드시 노년이 아닌 경우도 많고,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수단으로 전락되기도 하는 슬픈 현실이다. 클론도 영혼을 가진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창의적인 활동에 매달리지만, 인간이 몸으로 살아 있으되 그 영혼까지 살아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의 근원자’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클론의 모습도 인간과 많이 닮아 있다. 물질 만능주의, 외모 지상주의 시대에 살면서 과연 인간이 만물의 척도이고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히려, 물질, 시간, 명예, 허영, 사치의 노예로 살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도 모르고, 공허감과 허무함을 끌어 안으며 기댈 수 있는 근원자도 알지 못한 채 사는 것은 아닐까?
삶이 이미 정해져 있음을 알면서 장래 희망 토론을 하며 달콤한 부유 상태에 머물며 일상적 제약에서 해방감을 얻으려는 클론의 삶에 대해 이질감이 아닌 동병상련의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