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쓴 후기입니다.

1960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저자는 "십각관의 살인"으로 데뷔했으며, 본격 미스터리 작가 클럽의 설립 선언에서도 그의 공적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을 정도로 1980년대 이후 본격 추리소설의 부흥에 큰 공헌을 한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이런 공로를 사 2019년 제22회 일본 미스터리 문학대상을 수상했고, 2017년에는 데뷔 30주년을 맞아 코단샤 BOO<CLUP 구락부에 공식 홈페이지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럼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관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 <인형관의 살인>을 보겠습니다.

화자이자 주인공 히류 소이치는 화가로 작년에 안뜰 벚나무에 목매달아 죽은 아버지가 살던 교토의 인형관으로 옵니다. 친엄마 미와코는 28년 전 사고로 죽었고, 이후 아버지는 그를 이모 이케오 사와코에게 맡겼습니다. 그렇게 25년 동안 남남처럼 지내다 이모이자 길러준 엄마인 사와코와 이곳으로 7월에 이사했습니다. 서양식 건물인 녹영장은 하숙집으로 사용 중인데, 소이치와 6촌이자 작가인 쓰지이 유키히토, 동물학 전공인 대학원생 구라타니 마코토, 마사지사인 기즈가와 신조가 머물고 있습니다. 미즈지리 부부가 청소와 수리, 식사를 담당하고 있으며 소이치와 사와코는 일본식 건물 인형관에 머뭅니다. 조각가인 아버지가 건물 안에 인형들을 설치했는데, 마네킹과 비슷한 형태지만 신체의 한 부분이 없는 6구의 인형으로, 전부 지금 있는 장소에 그대로 놓아두라는 주인공의 아버지 유언이 있었습니다. 소이치도 처음 볼 땐 기괴하고 꺼림직했지만 자꾸 보다 보니 익숙해진 상황입니다. 소이치는 물려받은 재산으로 돈에 구애받지 않으며 자기만족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쉬다가, 동네 산책을 나가는 한량 같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동네 카페에서 어릴 때 친구인 가케바 히사시게를 우연히 만납니다.
8월, 9월에 어린아이를 목졸라 죽인 연쇄살인이 근처에 일어났지만 범인을 찾지 못한 가운데, 소이치 주변에도 이상한 일이 생기고, 급기야 보낸 사람 이름이 없는 협박장이자 예고장이 옵니다. 그를 노리는 사람은 누구이며, 어린아이 연쇄살인범은 누구인지, 자세한 이야기는 <인형관의 살인>에서 확인하세요.
<인형관의 살인>은 저자의 앞선 '관 시리즈'의 배경과는 좀 다릅니다. "십각관의 살인"은 외딴섬에, "수차관의 살인"은 산간 지역에, "미로관의 살인"은 도시 외곽에 천재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한 건물이 배경입니다. 하지만 네 번째 시리즈인 <인형관의 살인>의 '인형관'은 사람들이 일상을 살고 있는 교토 변두리 고급 주택가입니다. 그전까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건물이라 역시 소설이구나 하며 읽었다면, 이번 책은 변두리지만 교통이 편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소설이 아니라 현재임을 여실히 느끼게 해줍니다. 서양식 건물인 녹영장과 일본식 건물인 인형관이 붙어 있어 겉으로 보기에도 특이할 것 같지만 더욱 특이한 것은 건물 곳곳에 있는 6구의 인형들입니다. 건물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어느새 작가가 마련한 작품 세계에 푹 빠집니다. 그런 와중에 누군지 모르는 사람의 혼잣말과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는 주인공의 기억이 앞으로 무언가가 벌어질 것 같다는 예감을 들게 합니다. 그렇게 사건은 일어나고, 기괴하기 짝이 없는 6구 인형들의 비밀과 주인공의 과거가 파헤쳐 지면서 이야기에 긴장감이 확 돕니다. '관 시리즈'의 탐정 역할을 해왔던 시마다 기요시도 등장해 범인의 정체를 알게 되는 그때, 저자는 독자들에게 반전을 선사합니다. 이제까지 생각했던 이야기가 전부 뒤집히고, 진짜가 드러나며 머리를 띵하게 울리는 그 순간, 저자에게 감탄할 뿐입니다. 그동안 적지 않는 권수의 일본 미스터리를 읽었지만, 1987년 출간 당시 이 책을 읽었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놀라 한동안 멍했을 것입니다. '제일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말한 저자의 다음 책 "시계관의 살인"이 더욱 기대되며 얼른 읽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