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서평단 모집이 남의 일이라 치부한 탓에 큰 욕심 없이 응모하였으나 결과는 심장을 뜨겁게 했다. 초판 1쇄 당일 받아버렸으니 감동과 전율은 두 배가 되었다.
책을 받은 첫날. 나도 모르게 책의 절반을 독파했다. 빼곡히 들어선 추억의 밴드들이 반가웠고 소환되는 음반 하나하나가 전두엽을 강하게 자극하여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휩싸였다. 하지만 정성스럽고 잘 정돈된 활자들을 머리로 듣자니 못내 아쉬웠다. ‘추억이 끝나는 곳에서 그리움이 시작된다’ 는 유명 커피광고의 카피처럼 헤비메탈에 대한 동경이 시작되었고 그리움의 공간을 음악으로 채우며 처음부터 다시 읽기로 했다. 레드제플린, AC/DC, 주다스 프리스트 등 열거된 밴드들의 주옥같은 명반을 감상하며 읽다보니 1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평소 책 한권 정독하는데 2주 이상 걸리는 편이니 이마저도 꽤 빠르게 읽은 편이다. 분명 이러한 과정은 음악서적이 가지는 최상의 순기능이리라.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나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행위가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인지를 200% 공감할 것이다.
책의 목적은 뚜렷하다. 헤비메탈을 가슴 속 깊숙이 추억으로만 간직했던 아재들의 뜨거운 욕망을 소환하고 다시금 추억을 재생하게 하는 궁극의 화학작용을 기대하는 책이다. 특히 10여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는 Rock의 암흑기, Rock의 명백한 전파자였지만 레거시 미디어의 한계에 봉착한 라디오의 쇠퇴, 트로트 쓰나미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국내 미디어의 편식 등등 요즘 같은 Rock의 가뭄을 타파해 줄 오아시스 같은 책이라 더욱 반가웠다. 한 때 연필 대신 드럼 스틱을 쥐고 라스 울리히를 흉내냈던 학창시절이 떠올라 더욱 그러했다.
1970년대를 시작으로 50년을 관통하는 방대한 헤비메탈 연대기를 특정 밴드나 음반에 대한 단편적 서술이 아닌 구성과 흐름이 있는 서사적 접근으로 다룬 것은 헤비메탈을 이해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으로 보여 진다. 방대한 영역을 세심하게 관찰, 분석 그리고 다양한 레퍼런스들을 가지런히 잘 정리하여 친절함을 더해 주고 있다. 책의 제목은 계보도지만 내용은 상위호환인 연대기에 가깝다. 마치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처럼 역사 속 헤비메탈의 영웅들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었고 나를 헤비메탈이라는 위대한 장르의 역사 한복판에 인도해주었다.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디테일에 있다. 밴드의 탄생, 멤버 교체 그리고 앨범 제작기 등의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헤비메탈의 흥망성쇠를 세밀한 조직의 텍스트로 생동감 있게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아재의 퇴화된 기억 곳곳을 채워주며 추억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고 열광적으로 헤비메탈을 탐하던 시절의 무용담을 마치 어제 일처럼 느끼게끔 마법을 부린다. 마법은 요술이 되어 무료한 출퇴근 시간을 온전히 헤비메탈에 의존하게 했고, 폭주한 아재는 광기에 사로잡혀 하마터면 지하철에서 헤드뱅잉을 시전 할 뻔했다. 읽는 며칠간은 헤비메탈 열병에서 헤어나오기 힘들 정도로 책과 음악은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했다.
랜디로즈와 오지오스본의 극적인 만남, 딥퍼플이 왜 고난의 멤버교체를 했는지에 대한 필연적 이유, 머틀리크루의 끔찍한 파행이 갖는 헤비메탈 평행이론은 헤비메탈 음악사를 흥미롭게 전달하고 있다. 뮤지션들의 성장배경과 음악성의 관계성, 버밍엄, 시애틀, LA 와 같은 음악사적 중요한 도시를 짚어가며 펼쳐내는 통섭적 접근은 파편화된 기억의 잔재들을 하나로 묶어주기도 하며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가치를 재해석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책의 말머리에 기술한바와 같이 본 책은 과거의 추억소환에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책은 작가의 의도를 넘어 확장된 지점까지 인도한다. 요즘 같은 Rock의 암흑기를 살아가고 있는 (비교적) 젊은 세대들에게 썩 괜찮은 레트로 안내서이기도 하다. 비록 트렌드와는 거리감이 있지만 헤비메탈이 가지고 있는 통쾌함의 속성은 인간이 가지는 쾌감의 정서와 맥을 같이 하기 때문에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 얼마든지 효과적인 선곡리스트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음악이 더 이상 수집과 가치가 아닌 소비되는 휘발성 문화로 인식되어 있는 청춘들에게 더더욱 추천하고 싶다. 비록 꼰대 같은 이야기일지라도 말이다.
TMI : 어제 일자 (2021년 1월 30일) 빌보드 200 앨범 차트를 살펴보면 굉장히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AC/DC의 <Back in Black>앨범이 70위, Guns & Roses의 데뷔앨범이 100위, Nirvana의 <Nevermind> 109위, Metallica의 <Metallica> 168위, Pearl Jam의 <Ten>이 188위에 랭크되어 있다. 발매한지 30년이 넘는 음반들이 차트를 수놓고 있다는 점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쩌면 BTS 음반이 1위를 달성한 것에 못지않은 기념비적인 순간이다. 비록 미국의 차트지만 흑인음악의 홍수 속에서 발견되고 있는 헤비메탈의 약진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국내 젊은 계층에게도 충분히 어필의 여지가 있다고 여겨진다.
‘오래된 미래’와 같은 음악, 헤비메탈!
어쩌면 트로트 광풍이 헤비메탈에도 전달되어 모든 채널에서 헤드뱅잉의 퍼포먼스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건 정말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 책은 그런 광풍의 선봉장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위대한 가치의 출발점, 산물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응원한다.
애정을 가지며 정독을 하다보면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이 포착된다. 사심 가득한 뮤지션들이 생략되거나 (혹은 가볍게 묘사되고) 음악사적 중요 이슈들이 언급되지 않는 점들이 그러하다. 가령 퀸스라이크, 드림씨어터로 설명되는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영광과 팝메탈의 홍수 속에서 미스터빅, 배드랜즈, 블루머더가 이끌었던 정통 메탈의 빛나는 유산, 그리고 잉위맘스틴이 잉태했던 속주 기타의 태동과 마이크 바니 사단의 위대한 도전 등 굵직한 토픽들이 생략되었다. (사심에서 출발한 아쉬움이라 치명적이진 않다.) 그러나 이마저도 헤비메탈이라는 소재에 국한한 선택과 집중으로 너그럽게 이해된다. 지면의 한계로 인한 저자의 뼈아픈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것도 미뤄 짐작이 되고, 그러한 속사정은 어쩌면 2탄으로 해소가 되지 않을까?
끝으로 한 권에 담아내기에는 너무나 방대했던 헤비메탈의 역사를 각고의 자료조사와 솜씨 좋은 필체로 새겨놓았으니 추억을 기대하는 아재에게는 넉넉한 선물이 될 것이고 요즘 음악의 식상함에 새로운 것을 찾고자 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역사 속 헤비메탈 영웅들의 무용담을 읽는 한 편의 근사한 소설이 될 것이다. 감히 일독하기를 적극 권하고 싶다. 조잡한 서평 역시 서평단이 가지는 필연적 책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책을 완독한 이후 음악애호가의 진심을 담은 글로 읽히기를 기원한다. 아울러 출판시장에서 상업적 가치보다는 기록의 의미로 귀결되는 음악서적을 (특히 심하게 마이너한 헤비메탈 관련) 과감하고 용기 있게 세상에 내놓으신 출판사에게도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음악애호가로써 이 책이 부디 성공하여 저자께서 아껴두었던 다양한 음악 스토리가 2탄, 3탄의 시리즈로 발전되길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