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민족의 등불
rno21 2004/01/24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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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의 삶은 그 자체가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이다. 소년 시절 브나로드 운동에 참여하였고, 일본 유학시절 일본군에 징집되자 탈출하여 중국 대륙 6000리 길을 걸어 임시정부에 도착, 광복군 활동을 하였다. 그의 투쟁은 해방 후에도 계속되는데 어두운 지식인들의 등대가 된 [사상계]를 발간하여 이승만 정부에 대항하였고, 전국민의 민주화 염원을 군홧발로 짓이기고 등장한 박정희의 군사독재에 맞서 아홉 번 옥고를 치른다. 그 와중에 제 7대 국회의원에 옥중출마하여 당선이 되고, 필리핀에서 언론 문화부문 막사이사이상(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을 수상하기도 한다 (장준하와 함께 막사이사이상을 함께 수상한 사람 중에는 테레사 수녀도 있었다)
[장준하 : 민족주의자의 길]
절로 숙연해 지고, 때로는 가슴을 치며 분노하다가도, 마지막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책
두말할 나위 없이 이 땅의 젊은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
‘장준하’는 이제 내 삶에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었다
그 눈부신 빛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도록 노력할 것이다
(아울러 어서 빨리 장준하의 사인(死因)이 규명되기를 소망한다)
덧붙임 :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죽었을 때 일본의 한 신문에 ‘일본의 마지막 군인이 죽었다’는 기사가 나왔다고 한다. 그 기사의 요지는 박정희가 그렇게 오랫동안 군림하면서 정치적 파벌을 만들지도 않고, 사유재산을 따로 모아놓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사무라이 정신’을 실천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자면 (그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것은 쓰레기통에 쳐박아 놓고 보더라도) 광복군이자 임시정부의 요직에 있었으면서도 해방 후에 그 어떤 정치적인 요직도 거절하고 언론운동에 투신한, 그리고 박정희 정권의 그 부패한 시대에 국회의원을 하면서도 (장준하 역시 처음에는 당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파벌 싸움에 실망한 나머지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활동한다) 항상 빚에 쪼들려야 했던 장준하야 말로 진정한 위인이 아니겠는가. (또한 박정희가 사유 재산을 챙겨놓지 않았다는 말은 검증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단 한 사람, 박정희는 자격이 없다”
장준하 선생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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